성 안드레아 김대건신부님이 옥중에서 교우들에게 보내신 편지 속에『머리카락 하나라도 하느님의 섭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이 있다.
매사에 주닝의섭리를 엿보고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는 교우들이 되어달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신부나 신자가 인상 깊게 느끼는 것은 한국인의 종교의식의 활발성이다.
■ 계속되는 종교의식 활성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영세자와 성소의 증가 그리고 여러 신심단체의 활발한 움직임….
이러한 현상을 학술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다.
통계학의 원칙에 의하면 종교에 대한 관심은 생활수준에 반비례한다고들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197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연간 성장 폭의 차이는 있다하더라도 틀림없이 경제발전이 지속되었고 생활수준도 계속 향상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영세자와 성소의 증가율이 감소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 및 생활의 향상과 함께 병행하고있다.
이웃나라인 일본을 보면 연간영세자가 가장 많았던 해는 2차 대전 직후, 생활이 극도로 어려웠고 패전의 쓰라림을 느꼈던 1945년과1946년이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의 하나이며 종교에 대한 관심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대만 역시 6~7년 전에는 영세자나 성소가 꽤 많았지만 요즘생활이 윤택해짐에 따라 종교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게 감소되고 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종교의식의 활성이라는 현상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한국의 순교 성인성녀들의 피와 땀을 거름으로 삼아 이 시대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마련하여 저공하시는 섭리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기본사명은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복음을 전하는 일이며 이 사명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 우리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2백 년 전에 이 땅에 뿌려진 복음의 씨는 2백년을 거쳐 큰 나무로 자라가지마다 탐스런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지금 곧 따들 여야 할 시기이며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게 바로 이 열매를 수확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이와 같은 환경이 2년 혹은 3년 후 바뀌어 일본이나 대만처럼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다.
■ “하느님 보여 달라” 억지도
우리가「복음전파」라는 막중한 의무를 잊어버리고 소홀히 그리고 나태하게 생각하여 엉뚱한 일이 시간을 보내버리면 이와 같은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변천하는 시대와 주위환경에 맞추어 강구되어야한다. 기적을 행함으로써 사람들을 이끌었던 사도시대가 있었던가하면 신학의 논리적 체계가 잘 먹혀들었던 시대도 있었으나 현대인에게는 이것이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현대인은 참된 기쁨과 행복을 갈구하며 그것을 감각적으로 느껴 볼려고 한다.
사실 물질문화가 발전하고 감각을 내세우는 현대인은 생활의 편의와 행복을 감각적 흥분과 자극 속에 느껴 볼려고 온갖 애를 써보아도 얻지 못하고 좌절과 짜증으로 덮혀 있다.
가끔 그들은 『하느님을 보여 달라』고 억지를 부리며 오관으로 감각해야만 믿을 려고 하는 게 현대인의 심성이다.
이와 같은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리자신이 복음의 정신을 체험하고 실천함으로써 먼저 행복한 인간이 되어야하며 남들이 우리를 인생에 자신을 가지고 기쁨을 지닌 사람임을 느끼게 해야 한다.
우리가 남에게 전할려고 하는 것은 복음이며 이 복음의 뜻은 복되고 기쁜 소식인 것이다.
복되고 기쁜 소리를 낼려면 전하는 사람이 기쁨과 행복을 지니고 사는 이라야만 할 것이다.
자신을 저주하고 사회를 원망하며 남들을 헐뜯는 이가 과연 복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소리를 낸다면 짜증과 불평의 소리밖엔 나오는 게 없을 것이다.
“찡그리며 우는 성인(聖人)없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시대적인 사명으로 자각하고 있는 우리가 어느 때 누구보다도 복음의 정신을 철두철미하게 실생활에 반영시키고 행복하고 기쁜 인간으로 꾸며 나가는 것이 급선무라 하겠다.
행복한 인간인 우리를 통해서 복음의 주인공이신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찡그리며 우는 성인은 없다」고 한 옛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명심해야할 적절한 말이 아닌가 싶다.
과거 일반사회의 가톨릭신자들에 대한 평이 「점잖은 사람」이라는 것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점잖은 사람」에서 「복되고 기쁜 사람」으로 빨리 탈바꿈해야할 시기이다. 참된 기쁨을 지니고 또한 남들이 나를 밝고 기쁨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할 때야 비로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사도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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