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도 이미 중간지점에 와 있는 이때에 지난주 본보는 광주대교구의 완도본당이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먼저 그 실상을 요약해 보건데 이 본당은 전남 완도군청 소재지 본당으로서 24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간 공소에서 본당, 본당에서 공소, 다시공소에서 본당으로 기구한 도정을 걸어왔다. 그리고 현재의 신자 수는 2개의 공소 신자 1백21명을 합해 총 2백99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교적상의 숫자에 불과하고 완도 읍내에서 신자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44명 주일미사 참예자는 아동까지 합쳐 20명 정도이고 주일 헌금은 평균 5백 원 교무금을 합한 월평균 수입이 1만9천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형편이다.
이 참담한 현상을 읽고 문득 예수께서 빰을 맞고 편태를 당하고 가시관을 쓰시고 홍포를 입고서 나오시는 모습을 본 빌라도가『이 사람을 보라!』고 외쳤던 그 광경이 마치 오늘의 이 처참한 우리 형제 교회인『이 완도본당을 보라!』고 호소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 완도본당이 오늘의 상태에 이르기까지의 증상을 본다면 이 교회는 24년 전인 4년에 현본당 회장인 김회장 등 수 명의 신자들이 공소로서 시작되어 불과 2년 후에는 신자 3백 명을 넘는 성황을 이루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후 68년까지 12년간을 공소로 방치하는 동안 차츰 냉담ㆍ개종 등 쇠퇴일로의 길을 걸었다. 그 후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지만 작전일까지 5년여 동안 6명의 주임사제가 교체되었고 그간 1년 2개월 간은 주임신부 철수로 다시 공소로 격하되는 파탄을 겪었다.
그러나 작년 11월 목포 경동본당 주임에서 자원해온 김종남 신부의 비장한 결의로 본당 재건의 기틀을 잡기 시작했다. 대개 이러한 사건들이 완도본당이 오늘의 초라한 교회로 전락, 존폐의 기로에 서게 한 사연들이다. 지금에 와서 지나간 날의 시비곡절을 따져본들 무슨 유익이 있을까만은 그러나 이에 대한 깊은 반성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여기는 교구의 사목상의 일관성이 결여됐다는 것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의 빈번한 공소 격하 신부 교체 등이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또 그간 완도본당을 거쳐온 주임사제들의 소극적이고 무능력한 사목활동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신자들에게는 교회 설립 초기의 왕성한 열의에 비해 비록 사목상의 허약성에 대한 실망이 컸을지라도 인구 14만의 일군에서 비교적 경제적 조건이 부유한 읍내 본당이 불과 40여명의 신자밖에 없다는 사실은 본당 간부 신자들의 의욕과 정열이 지나치게 저상되어 있다고 논평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상기해야 한다.『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에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다고 합시다. 그럴 경우 여러분 중 어떤 사람이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주지 않으면서 편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으라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2ㆍ15~16) 지금 완도본당은 입을 옷도 없고 먹을 양식도 없고 거처할 집도 없다. 월 1만9천 원으로 어떻게 먹을 것이며 20평짜리의 목조 창고로서 어떻게 본당 가족들이 모일 수 있겠는가? 과거의 잘잘못을 헤아리기 이전에 우선 긴급 구조의 길을 강구해야겠다. 다시 한 번 사도요한의 간곡한 말씀을 들어보자.『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I요한 3ㆍ17) 한국의 본당 수는 대개 5백을 넘고 있다.
이중에 농촌본당을 제외한 대ㆍ중 도시의 본당만도 2백 개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본당들은 요한사도가 말하는「세상의 재물을 가진 자」에 속할 것이다. 본지 지난호의 본란에서는 농ㆍ도 교회의 자매결연에 관해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이 완도본당의 경우는 바로 농촌본당의 취약성을 극단적으로 나타낸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궁핍한 형제」에 대한 긴급한 구조의 손길이 뻗혀져야만 하겠다. 이와 같은 경우는 몇 개 도시본당에 자매결연의 차원을 넘어서 적어도 대도시의 여유있는 본당들이 단체적 힘을 모아 모처럼 비장한 포부로서 완도교회 재건을 위해「돌과 흙을 날라다 땅을 메우면서」성당 건립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본당 신부와 신자들의 뒤를 밀어주는 데 인색하지 말 것을 재삼 당부하는 바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