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사순절이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몇 해 전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빈털털이가 되어 극도의 고독과 불행 속에서 처음 천주님을 찾고 그리고 영세를 했을 때의 일이다. 아침 저녁으로 성당에 나가서 미사에 참예하고 시간이 있으면 옛날 순교자들의 행적에 관한 서적을 읽곤 했었다.
하루는 신부님이 나를 보시고 우리 인간의 신앙생활은 우리들이 죽을 때까지 천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평탄하면서도 평행선을 가는 것 같은 신앙생활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나처럼 열심했다가 냉담하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곡선을 그리는 신앙생활을 지양하라는 것이다. 그때 나는「동서의 피안」이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뜰 앞에 심은 무궁화나무에 싹을 재촉하듯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시간이 다 된 모양인지 성당에서 삼종을 울리는 종소리에 그만 나는 자신도 모르게 일어서서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섰었다. 비오는 날 내가 더욱 열심해야겠다는 간절한 소망에서일 것이다.
나는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오래도록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참 후에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삶을 영위해와다. 연륜과 더불어 인생의 관록도 두터워지고 중년 여인으로서 자기가 걸어온 과거의 발자취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제법 갖게 되었다. 작으나마 자기 철학을 정립해 보려고 때로는 천주님 앞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온 연륜에 비해서 나의 영신적 신앙생활은 얼마나 발전한 것인가…무대 위의 배우처럼 웃고 울고 즐기는 인생의 여정 가운데서 나의 신앙생활은 점점 퇴색해간 것은 아니었던가….
참으로 염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무수히 넘어졌던 나의 신앙생활을 이 사순절에 다시 일으켜 세우고 천주님 제단 앞에 겸손되이 무릎을 꿇고 이제는 세상의 자기 발전보다 나의 영신적 발전과 보다 나은 신앙생활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거울 속에 비추는 나의 얼굴의 잔주름이 하나둘 생길 때마다 이것이 나의 영신적 발전의 표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