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내에서 어린이들의 교육은 청소년들의 교육보다는 훨씬 앞선 것 같다. 교재도 넉넉하고 지도자 확보도 어느 정도 용이하다. 그러나 이들이 국민학교 졸업 후 이어져야 하는 계통적인 수용 태세가 마련되어 있질 않아서 중간에 유실되어버리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기에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청소년 교육 문제가 크게 문제시되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해결이 안 되는 이유는 이들에게는 어느 계층보다 더 세심한 관찰과 그에 따르는 수고로운 경험들, 그리고 항상 그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그들의 일에 동참해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들의 역할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우리 교회에는 너무나 많이 깔려 있다. 즉 교회가 청소년 교리교육에서 실패하고 있는 원인은 전문가들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너무나 자명한 이유들이 많이 있다. 교재가 없다든지 지도자 자신의 사명감 부족이라든지 상급학교 진학 위주의 교육 환경에 따른 사회적 여건이라든지 시설의 부족이나 부모님의 무관심 등등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도 커다란 원인은 첫째로 성직자들 스스로의 청소년 교육에 대한 무관심일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청소년 교육의 많은 책임은 역시 본당 신부님에게 있으며 그러한 사실이 교회 전체의 청소년 교육을 위한 장기적인 교육 계획보다는 그때그때의 본당 신부님의 기호에 따라 청소년 모임이나 교육이 좌우되고 있음을 많은 교회에서 볼 수 있다.
사실 지도자들이 아무리 발버둥치고 시간과 정열을 쪼개어 청소년 교육에 열을 낸다 해도 본당 신부님의 반응이 냉담하고 오히려 귀찮고 번거로운 부담거리로 일축한다면 진실로 자포자기의 이중적인 쓰라린 고통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마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 내의 어른들의 청소년에 대한 그릇된 인상이 그들을 교회와 멀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은 단조로우면서도 선한 욕구를 가지고 서로 어울려가면서 교회 일에 참여하고 그러면서 나름대로의 교회의 의미를 느끼게 된다. 그것이 설상 비신앙적이라 하더라도 자기대로의 교회 안에서의 첫 인상을 그려나간다. 그런데 이와 같은 참여 과정에서 이미 교회에 자리잡고 교회의 기존 멤버로 있는 어른들이 시종일관 그들의 행동을 볼 때에는 너무도 탐탁치 못한 꼴들을 많이 한다고 그들을 나무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금 당장 어떤 큰 기대 속에서 교리교육의 중요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학생들이 그저 미사에나 참예하고 교리교육이나 받는 이 외의 목적을 무시해버리는 태도로 나온다면 그들은 불평 속에서 교회와 거리를 더욱 크게 갖고 멀어져만 갈 것이다.
이미 어른들은 신앙의 기틀이 서 있고 신앙의 분별력이 성숙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문제는 청소년들보다도 자기 자신의 어떤 성숙한 신앙의 틀에 맞추려는 어른들의 자세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틀에 그들이 맞지 않으니까「너희들은 바로 문제이다」라는 식의 속단보다는 빠른 미래에 그들을 올바른 신앙인으로 육성시켜야 하겠다는 교육적인 견지에서 관찰하면서 그들의 발전 과정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셋째로 교회는 청소년들이 자유스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분위기와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교회는 청소년들이 수시로 와서 둘러앉아 정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정신적 위로의 고향과 낙원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나 영적인 고갈상태에 빠질 때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바로 교회가 되어져야 한다.
넷째로 이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는 사명감을 갖고 자신을 불태울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바로 지도자의 모든 것을 닮아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내가 지도자로서 얼마나 그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그들을 위해 얼마나 성의있게 준비했고 그들의 환경과 사정을 알아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 또한 내 신앙이 그들 신앙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그들이 아는 것을 내가 모르고 의심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이런 반성을 마땅히 자주 해야 한다. 지도자 자신들의 신앙과 사명감, 그리고 정신 자세, 교리 지식, 교회에 대한 애착심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오히려 순진하고 열성적인 학생들에게 뒤지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가 지도자이며 누가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냐고 모두 자신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각자에게 지어진 지도자라는 멍애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알고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신앙 속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문제 외에도 많은 어려움들이 청소년 교육의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라도 교회가 청소년들을 진실로 내일의 주인공으로 맞기를 원한다면 바로 오늘의 내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좀 더 커다란 관심을 갖고 무언가 보답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가톨릭이 놓쳐버린 수많은 청소년들이 오늘날 우리 교회에 남아서 보다 충실하고 튼튼한 일꾼들이 되어졌다면 오늘날 한국 가톨릭은 더욱 풍성해졌으며 더욱 큰일을 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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