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어느 시골 본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본당 주임신부의 강론은 보통 한 시간이 걸렸다. 강론이 시작되면 신자들은 느긋하게 아예 서늘한 나무 그늘 밑에 앉았다 들어오곤 했다. 이 꼴을 본 본당 신학생이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한바가 있었다. 신부가 되어 같은 본당에 부임한 그 옛날의 신학생은 결심한대로 강론을 착실히 준비하여 10분 만에 끝냈다. 기대했던 대 환영은 커녕 노발대발하는 신자들에게 까닭을 물었다『세상에 원! 무슨 놈의 강론이 그렇게 짧습니까? 겨우 파이프에 담배를 채워놓고 막 불을 붙이려는 찰나에 벌써 강론이 끝나버리다니요?』터무니없는 불만도 이 쯤 되면 가히 시상 감이다. ▼강론을 듣는 태도는 참으로 다양하다.「강론」하면 으레「지루한 것」으로 치부해놓고 절대로 안 들으려는 신자가 있다. 그래서 강론만 시작됐다하면 아예 바깥으로 나가는 외출형이 있는가하면 줄기차게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지방방송형도 있다. 주보나 기도서를 뒤적거리는 딴전부리기형, 조는형 숙면형도 있고 공상 속에 빠져있으면서 듣는척하는 시침떼기형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야 아무리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이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게다. 마음은 콩밭에 가있으면서 몸만 성당에 갖다놓았다고 주일의무를 다할 수 있을까? ▼어느 외국 영화를 보니 강론 중 내내 열심히 졸기만 하던 신자가 미사를 끝낸 사제에 제일 먼저 달려가『신부님, 강론 정말 훌륭했습니다.』라는 인사를 하자 징그럽다는 듯이 쳐다보던 사제의 표정이 생각난다. 성의 있게 듣지 않았다면 강론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조차 없지 않은가! 그런데 한 주일을 살아갈 빛과 생명의 말씀을 갈망하며 귀를 기울이는 신자들에게 준비 없이 횡성수설 시간만 끈다든지 신경질만 벅벅 부린 다든지 남이야 듣든 말든 입속으로 웅얼거린다든지 일편단심 정치이야기, 더구나 정부비난만 퍼부어대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불의한 정부라고 욕하는 그 행위가 바로 복음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신자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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