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 사도가『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을 때『나는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로마로 가는 길이다』라고 예수께서 대답하셨다고 한다. 그러나『주여, 무슨 까닭에 하필이면 로마로 가시나이까』하고 다시 물었다는 이야기는 없는 듯하다.
우직하고 소탈한 어부 베드로였기 때문에 그 한마디로 충분히「로마」의 뜻을 알아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로마」를 위해서 순교할 것까지 각오했을지도 모른다.
대체 여기서 거론되는「로마」란 무슨 뜻일까. 우리도 베드로 사도 같이 다시 묻지 않아도 그 뜻이 불을 보듯이 명백하단 말인가. 아니면「로마」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살고 있는 화려한 수도를 말하는 것일까. 혹은 장차 형성될 신약시대의「로마」즉「바티깐」궁전이 세워질「로마」를 뜻하는 것일까. 그로부터 20세기가 흘러간 오늘날『로마는 이미 로마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한 마르셀의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과 같이 그 뜻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것은 부활날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찾아간 막달레나ㆍ마리아에게 천사가 하던 말『주께서는 이미 여기에 계시지 않습니다』와 같은 뜻일까. 혹은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 새로 강조하게 된「하느님의 백성」을 뜻하는 것일까. 마르셀은「우리 교회」니「우리 가톨릭」이니 하는 말은 모순된 말이라고 하면서「우리」가 붙을 때 그 뜻은 변질된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로마 가톨릭」이라고 할 때의「로마」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이것은 아마 진리의 사물화를 꾸짖는 태도일 것이다. 진리를 사물시하는 것은 공금을 횡령하는 것보다 더 추악스러운 일이겠다. 그것은 가톨릭교회를 자기에게 유리한 하나의 당파로 여기는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로마 가톨릭 교회는 로마의 사유물이 아니다」라는 뜻이 되는가.
그러나「로마 없이 어떻게 로마가 있을 수 있었을까」마치「베틀레헴이 없었다면 예수 아기는 어떻게 탄생했겠는가」하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진리만을 보고 역사적인 실존을 망각하는 것은 또 하나의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오로 사도가 그 옛날에「아테네」사람들에게 내세운「십자가의 어리석음」이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또한「인카르나시오」(降生)의 뜻이 아니겠는가.
「베틀레헴」「예수 아기」「십자가」그리고「로마」를 제쳐버리면 그리스도교는 심장 없는 허수아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중세기의「십자군」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그들은 진리를 위해서 싸우고 생명을 바치는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혹시 진리를 화석 같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로마」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쟈니콜라라는 언덕에는 엠마누엘 2세가 말을 타고 있는 거대한 동상이 있는데 그 대석에「Roma O morte」라고 새겨진 것이 눈에 띈다. 아마 이 황제가 결사적으로 로마 교황 영토를 점령한 것을 기념하는 뜻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 새겨진「로마」라는 말의 뜻은 분명히 영토를 뜻할 것이다.
『세살의 것은 세살에게 바치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치라』는 말씀은 알아듣기 쉬운 것 같으나 현실적으로는 지극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세살」에게 무엇인가 바쳤으니 그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이라고 한시름 놓을 수도 있겠고 또「하느님」에게 무엇인가 바쳤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그것으로「하늘나라」가 자기의 것이 된 것처럼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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