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가장 독소적인 병폐가「나눔」의 불공평과「대화」의 단절이나 역기능에 있다는 것은 집약된 국민적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나눔의 불공평ㆍ대화의 단절
이 사회가 겪는 모든 불안, 불만, 좌절, 적대심리, 대결의 끝없는 악순환, 급진적인 좌경성향, 과격한 시위에 맞서는 과격한 공권력의 발동, 민주화를 원하면서 민주화에 역행하는 이율배반성, 지성인의 침묵, 개헌을 둘러싼 국가적 혼미 등 모든 것의 근원적인 병리가「나눔」의 불공평과「대화」의 단절이나 역기능에서 유래된다. 『슬픔은 나누면 나눌수록 적어지고 기쁨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씀이「나눔」의 본질과 극치를 극명하게 묵시한다. 이 작은 나라의 부는 동산ㆍ부동산 할 것 없이 몇몇 재벌들에게 점유되어있고 이 땅의 권력구조도 편재하거나 독점된 상태임을 부정할 수 없으며 헌법을 초월한 감마저 준다.
10만원 내외의 월급에서 불과 몇%안 되는 인상을 요구하다 분신자살한 근로자의 죽음을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시각으로만 보지 말고 최소한의 생존권과 인간 존엄성을 갈구하는 소외된 망각지대에 사는 계층의 처절한 호소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의 분재는 너도 백 원 나도 백 원, 너도 집 한 채 나도 집 한 채 식의 소유의 획일성을 뜻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은 당신대로 잘살되 나도 내가 제공한 노동의 댓가만큼 살게 해달라는 절규이며, 가진 자는 그 부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에서 탈피하자는 국민적 절규이다. 불공평한 부의 편재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 않게 미분화된 원시형의 권력의 편재에도 그 원인이 있으며 그 부나 권력의 발생형성 과정에서 윤리성의 문제가 있다면 국민의 불신ㆍ불만은 당연할 것이다. 권력이나 정치의 편재는 공명정대하면서도 평범한 민주화가 바로 그 나눔이요 분배인 것이다. 나눔에는 물질적 나눔, 정신적 나눔, 생명체 일부의 나눔이 있다. 물질적인 나눔은 사랑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등 정신적인 바탕없이는 그 나눔의 의미가 없다. 생명체의 나눔은 헌혈, 안구나 콩팥 등의 나눔을 말하며 타인의 생명을 소생시키고 신체의 생리적 기능을 복원시키는 희생을 말한다.
이 생명체의 나눔에서 제기하고 싶은 사안은 각종 흉악범이 사형선고를 받고 참회와 더불어 자신의 중요한 생명체의 일부를 남의 생명을 위해 기증 했을 때 그들에게 사형만은 면제해 줄 수 있는 법적제도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사형론의 정당성 여부와 인도주의 인간주의 종교 간에 오랜 왈가왈부가 피차가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명분을 찾게 될 것이다. 앞으로 생명공학이나 의학의 발달로 인간은 더 많은 더 중요한 생명체의 일부를 서로 나눌 수 있는 시기가 곧 도래할 것이다. 나만의 꿈이 아닌 이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나눔의 극치로 이룩되길 기원한다.
◆언로(言路)막혀서는 대화 곤란
한편 우리는 대화의 필요성을 그렇게 염원하면서도 대화다운 참된 대화가 없는 게 현실이다. 언로(言路)가막힌 상태에서 대화는 존재할 수 없다. 대화는 잔꾀나 술수로 상대를 어느 정도 유도할 수는 있으나 새로운 합의나 화합을 창출할 수 없다. 다만 대화하는 형식이 존재할 뿐이지 내용이 담겨질 수 없다. 즉 가식의사소통(Pseudo-communication)이나 가식상호유대(Pseudo-mutuality)만이 존재하기에 우리의 소원인 국민적 화합이 이루어질 수 없다. 특히 약자와 강자, 가진 자와 못가진자 권력자와 피지배자사이의 대화는 더욱 어려운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얼마 전 미국무장관의 방한 시「칙고」라는 견공(犬公)이 귀빈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장관실까지 침입한 사건이 있다. 애교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엄청난 헤프닝이다. 우리는「개망신」「개취급」을 당했으니 꿈틀거리고 기지개 켜는 사회일각의 반미감정이 잠잠 할리 없다. 이 무슨 강자의 오만과 불손, 횡포인가「개」니까 다행이지「돼지」가 탐지에 민감했다면 우리는「돼지」취급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 후 미국 측의『불행한 오해…』라는 해명과 정부 측의『청사직원이 잘 몰라서…』의 사후변명도 극히 불쾌하다.「불행한 오해」란 누가 어떻게 오해를 했다는 말인가? 그 해명자체가「헤프닝」보다도 더 불쾌하고 모욕적이다.
우리 측의 변명도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며, 언제 우리 정치사회풍토가 청사직원이 강국의 무법자가 왔을 때 이를 제지할 수 있는 권한과 소신과 확신을 가져본 일이 있는가. 이 불행한 사건 역시 지극히 분명한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강자와 약자사이에 생긴 대화단절의 소산물이다. 이번 건물세의 기습인상으로 법국민적 저항에 부딪친 정부의 처사도 정부(강자)가「하라면 하는 것이지」식의 국민(약자)을 깔보는 대화가 없는 행정의 불상사이다. 국민을 깔보고 없이 여기는 눈동자는 산골짜기의 까마귀가 좋을 것이며 광야의 독수리 밥이 된다는 두려움을 상기하자. 또한 이 어려운 시기에 대학생 전방입소훈련을 강행하려고 고집하지 말고 필요한 교과라도 당분간 뒤로 미루거나 자유선택 하도록 대화나 여유를 못 갖는가. 분단된 독일에서는 동서독 간에 어떤 형태는 끊임없이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의 우리 상황과는 천지차이다. 우리도 남북 간의 대화가 중단 없이 항구적으로 통일의 그날까지 계속되기를 기구한다. 대화에는 말을 매체로 하는 대화, 무언의 대화, 침묵의 대화, 자기양심과의 대화, 궁극에는 하느님과의 대화가 있다. 무언의 대화, 침묵의 대화를 의롭게 헤아릴 수 있는 정치사회 풍토의 확립이 시급하며 그 길이 바로 자유 민주화라고 확신한다.
◆개인ㆍ집단모두의「민주화」
성경에『태초에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우주만상을 창조하셨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는 말씀=대화를 통해서 더 새롭고 아름다운 것, 더 자유롭고 품위 있는 것, 더 평화롭고 정의로운 것을 창출하고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이웃의 가난을 내 가난처럼 나누어야 한다. 욕심에는 끝이 없으며 소금물을 마시고 갈등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음이 있다. 사람에게는 심성과 불성도 있으나 번뇌의 늪도 있다. 마음을 비우고 대화하고 나누면 우리의 살길은 평화롭다. 자유가 있고 민주화가 되고 합리성이 있고 사회정의가 싱싱할 때 우리는 개인이나 집단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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