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사제생활 60주년을 기념하는「금강경축」자리의 주인공 구천우 신부는 90세의 나이가 무색 할 만큼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반듯한 자세로 까마득한 후배들을 압도했다. 당일 축사에 나섰던 한 교수 신부의 말을 빌리면『구 신부님의 건강비결은 바로「마음의 평정」』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신학교 재입 10년간을 옆에서 지켜보았다는 그 신부는『구 신부님의 가장 큰 역정이「쓸데없는 소리」「나원참」이었다』고 떠올리면서 언제나 부드럽고 온화했던 대선배, 구천우신부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자네 신학교 갈 생각 없나』라고 던진 본당신부님의 말씀을 그래도 사제성소로 이어온 구 신부는 현존하는 한국인 사제 중 최고령. 1897년생이니까 2세기를 거쳐 사제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타고난 성품 그대로 조용히,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사제의 삶을 지켜온 구 신부였지만 지난 75년 은퇴한 후 11년간의 삶은 한마디로 외로움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76년 사제서품 50주년을 기념하는 금경축에 앞서 만났던 구 신부는『외로운 것이야 말해서 뭘해』라는 말로 쓸쓸한 노후를 대변해주기도 했었다.
때문에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4명의 주교와 교황대사, 그리고 후배 사제단이 함께한 이날 금강경축행사는 이 노 사제에게 60년 사제생활 중 진한 감동과 보람을 느꼈던 순간인 듯싶었다. 행사 후 김 추기경과 나란히 손을 잡고 축하연장으로 향하는 구 신부의 모습은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 없었다.
이날 축하식 자리에서 구 신부는『오늘의 이 영광을 고스란히 추기경님께 돌려드린다』는 말과 함께 참석한 모든 이에게 추기경님을 위해 기도해 주기를 부탁, 교구장에 대한 절대적인 순명과 존경, 사랑의 자세를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묵묵함 속에서 인고의 자세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충실했던 노사제가 더 이상 외롭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결코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으면서 넉넉하게 인생을 살아온 대원로로부터 사람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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