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전주자치교구 설정 50주년 기념대회 및 성지순례에 참가했다. 전주교구가 첫 방인교구로 설정된 것은 바오로의 기도처럼 우리 선조들이 성령으로 굳세어진 내적 인간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날 기념미사와 세례식에만 참석하고 중바위와 천호성지로 가기위해 금암동을 뒤로하고 예전엔 철도가 지났던 오목대 옆길을 달려 유요한 이루갈다 동정 부부가 누워있는 승암산 밑에 이르자 화강석 십자가가 햇볕을 듬뿍받아 어둠에 깃든 우리 얼굴을 훤하게 비춰주었다. 마치불가의 회광반조(回光返照) 같았다.
승차한 채로 차를 돌려 인후동을 지나 예비군 훈련 받던 용진면을 거쳐 노란물감을 부어 놓은 듯한 벼숲을 헤치며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천호성지에 다다르니 하얀 십자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새로 포장된 길에 버스를 버려두고 15분쯤 걸어 손선지 정문호, 한원서 세 분 성인과 10인의 무명순교자가 잠든 곳에 이르니 먼저 오신 김진소 신부님이 이곳에 모신 성인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뒤이어 도착하신 추기경님, 교황대사님, 주교단과 함께 기도를 올리고 「순교자찬가」를 소리 높여부르니 샘솟는 듯한 용기와함께 뜨거운 눈물이 안경을 따라 떨어지고 있었다.
무명순교자의 보람도 헛되지 않아 피정의 집도 축성식을 갖는 기쁨의 날이기도 했다.
오늘의 순례를 계기로 내 고장의 성지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되었다. 중바위, 숲정이, 나바위, 순교자의 피를 담은 병이라는 뜻의 천호산… 모두 익히 들어보고 내가 자라나온 고장이다.
불편한 도로 사정의 성지순례길 끝까지 성의껏 안내해준 교통경찰관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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