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비가 눈발을 몰고 내리더니 추위가 성큼 다가선다. 비바람에 젖은 산천이 정결하게 드러난다. 이 비가 그치면 겨울이 대지의 뼈속깊이 사무칠 것이다. 이런 척박한 계절일수록 사람의 마음은 또한 따스한 여백을 찾게 되는가. 따뜻한 아랫목과 따뜻한 차한잔이 그립다. 내면에 고여드는 고동을 서로 나눌 따뜻한 인정이 그리운 것이다.
해마다 세모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이 자연의 섭리앞에 사람은 다만 숙연해질 뿐이다. 세모를 보내는 마음은 모두 착잡하다. 지나가는 한 해를 되돌아보며 사람으로서 부족하고 미진했던 점을 깨달으며 다가오는 새해를 조용히 맞이할 준비를 한다. 교회력으로는 오늘부터가 대림 둘째주일이 시작되는 날이니, 장차오실 아기 예수를 희망속에서 기다리는 때이기도 하다. 저무는 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새로오실 구세주를 기다리는 희망이 교차하는 때라고 할까.
그러나 저 아래 시정의 거리는 그렇지가 못하다. 20여년만에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뽑는다고 모두 들떠있다. 뽑는 사람이나 뽑히는 사람이나 서로 편을 가르고 적을만들어 무섭게 싸우고 있다. 말을 들어서는 어느쪽이 진실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차마입에 담을 수도 없는 조작된 유언비어가 사람을 현혹하고, 폭력이 예사로 난무하여 보는 사람의 가슴에까지 깊은 상처를 내고있다. 일파만파로 갈라지고 돌아앉는 마음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래서야 어찌 민주주의가 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지붕위를 가로질러가는 허망한 겨울바람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가슴 밑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것 같다. 바람은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는 無心 그것이다. 저 무심한 바람에 사람도 마음을 맑게 씻을 수는 없을까. 사람이 사람을 바로 보고 바로 말할 수 있는 세상이 와야한다. 문을 닫아걸고 돌아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마음의 따스한 아랫목에 사람을 초대하여 인정을 나누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누가 그것을 할 수 있는가. 희망 속에서 아기예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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