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10년을 넘게 지내면서 느낀 것이 많지만 그 중에 하나로서 그들의 질서에 대한 태도를 들어볼수있겠다.
그들은 친한사이에서는「안녕하세요」하는 의례적인 인사대신에「알레스 클라」(Alles klar: 모든 것이 잘돌아 가는가)또는「알레스 인 오드드눙」(Alles in ordnung: 모든것이 제대로 돌아가는가)라는 말을 서로 만났을때 사용한다. 둘다 질서에 대한 물음이다.
한국에 있을때 나도 몇번 독일인들의 질서에 대한 의식에 대해서 들은적이 있다. 예로서 나는『독일인들은 빨간불 앞에서는 절대로 건너가지 않는다』는 식의 좀 과장된 얘기를들은 기억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보면 미련스럽게 느껴지기 조차 하는 이들의 질서의식이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하는점이 나의 의문점이 되곤했다. 내가 볼때는 남의것을 부당하게 욕심내지 않는 정신적인 여유와 풍부한 물질적인 여유에 있는것 같았다. 먼저 정신적인 여유로는 그들은 비록물질적으로 이익이 된다하더라도 자기의 체면에 상처가 될 때는 물질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예로서 독일에는 아주 빈곤하게 사는 전쟁미망인들이 많이 살고있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아주 적은 액수의 연금으로 어렵게 살고있지만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려고 할때에 자기들은 가난하지않다고 한사코 거부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 반대되는 사실, 즉 물질적인 여유가 있으므로 정신적인 여유가 있지않는냐 하는 사실도 나는 경험한 적이 있다.
그날은 날씨가 춥고 갑자기 많은 눈이 내려 교통이 혼잡하고 내가 타고가던 전철이 한정거장을 간 후 기관고장으로 모두가 내려 전차로 갈아타야되었다. 거기에서 나는 지금까지 여유있던 독일인의 모습대신에 질서가 없는 독일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서로가 타야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그들은 질서의식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여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가 전차를 타기위해 경쟁하였으며 나같이 체구가 적은 동양인은 타기가 어려웠던 경우를 나는 경험한 적이있다.
이 두개의 서로 다른 상태를 즉,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면과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 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도 역시 완전하지는 못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다. 이 두개의 상반된 사실을 경험한후 나는『독일인이 어떠냐』고 물음을 받으면『그들은 우리보다는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다』고 대답을 했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그들의 정체를 나는 모른다. 오래 살다보니 나도 그들에게 동화가 되었는지 작년에 귀국을 한후에 여기서 느낀것은 질서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는 독일이 한국보다는 질서가 잡혀있다고 할 수있겠다. 그러면 눈에 띄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질서 의식이란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생각을 같이해보기로 하자. 이 대답을 찾기위해 나
는 야구장에 모여 관람하는 두가지 형태의 관람태도를 비교하고 싶다. 하나는 모두가 자기 자리에 앉아 야구경기를 관람하고 또 하나는 서로가 흥분해서 자기자리를 이탈해서 움직일 때에 질서가 있다고 생각되는 쪽은 자리에 앉아 관람하는 편일것이다. 질서라는 개념은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베버가 규범적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한 개념이다. 즉 질서는 규범이 있으므로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비록 문화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규범을 가지고 있다.
질서라는 것은 규범이 있으므로 존재한다고 볼 때 질서는 인간 삶에 있어서 공간적으로 제한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규범이있으므로 공동으로 살수있지만 규범이 있으므로 생활영역이 좁아지는 득과 실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 또한 규범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기가 어려운 존재라고 할 때 규범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삼국지에 보면 적을 속이기 위해 먼지를 많이 일으킴으로서 적을 당황하게 만드는 장면이있다.
먼지를 일으키게 되면 물체를 똑바로 분간할 수가 없게 되므로 인간은 그곳에 숨을 수가 있느것이다. 즉 인간은 먼지 속에 있을때 나의 정체를 폭로시키지 않을수 있으며 그로 인해 나를 보호받는 것으로 착각할수가 있다는 말이다. 인간은 보통으로 남보다 넓은 삶의 영역을 가지고 싶어하며 남보다 안락하게 살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을 억제하게 하고 같이 사는 방법 즉 질서를 지키고 규범을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도덕성이라고 본다. 인간은 도덕성이 있을때 규범을 인정하게 되며 규범이 있을 때에 자기의 위치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욕심에 빠질때 질서를 거부하게 된다. 질서가 없는 혼란한 사회에서는 인간이 목전의 이익만을 생각하게 되며 규범이 없으므로 자기의 주장만을 하게된다. 그러나 질서가 있을 때에 인간은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으므로 인간이 숨을 곳이 없으므로 즉 어두운 면이 사라짐으로서 투명한 사회가 될 수 있는것이다. 질서는 서로가 이기심을 버릴때 성립될 수가 있느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회에서 질서가 없어져가는 현상을 보고있다. 질서가 없는 상태에서는 누구나 소리가 커지고 또한 바삐 움직이면 먼지는 더 많이 나게 되고 그러면 자기가 주인공인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인이라는 긍지를 가진 민족이 아닌가?
우리는 이제 자기 욕심만을 채우기위해 질서를 깨뜨리지 말고 같이 사는 방법을 실천할때도 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질서를 잠시 깨뜨리던 독일인들처럼 절박한 상황에 살고있지는 않다고 본다. 우리는 먼저 움직이지않고 먼지를 내지 않는 삶을 배우고 실천해야 되겠다. 즉 질서를 깨트리는 환경을 내가 먼저 조성하는데 앞장서서는 안되겠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체면에 못이며 자기의 권리를 포기하는 할머니들의 생활을 칭찬하자는 얘기도 아니다.
다만 우리는 자기의 위치를 남의 위치로 착각하지 말고 조용히 자기의 자리를 지킬때에 먼지도 가라앉고 그러면 서로가 서로를 확인할수 있는 질서가 생겨나며 이 질서가 존재할 때에 사회는 투명해지는 즉 사회의 정화가 이루어지어 사회의 어두운 구석이 사라지는 그야말로 복음적인 의미에서 건전한 사회가 이루어질 수가 있다고 본다. 내가 먼저 조용히 밝은편에 서는 즉 조용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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