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제는 자라면서 하루 한 장의 성경 봉독을 해야만 회초리를 면했다. 주님의 일꾼이 되라 이르시는 어머님은 앞뜰에다 개신교 천막교회를 세워 피난민 교우들을 수용 하셨는데 어느 여름 아침 새벽기도에서 돌아오시자『운(運)아 ! 어서 아침 먹고 손양옥 목사 부홍회에 가야겠다. 어제 밤하늘에서 두 장의 편지가 내려와 내 무릎에 떨어졌다』하시더니 희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대소변도 마치셨다. 『얘야 ! 그 베개 좀 내려다오』하시면서 반듯이 누우시더니 두 손을 가슴에 합장하시면서『주여! 내손잡고 가소서. 그 한 말씀이 40세의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 일 줄이야.
그 후 몇 년 있다 결혼했는데 남편은 아오스딩이란 영명을 가진 천주교 신자였다. 하루는 감리교에서 개종한 성당 여 회장이 집 구경 오더니 개종을 적극 권하신다. 6개월간의 입씨름 끝에 천주교 서적을 읽고 그 다음해 두 아들과 함께 영세식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대모님이『글라라야 너 아들 몇을 바치겠니?』『예 절반 바치겠습니다.』
약속한대로 건강하고 과묵한 둘째를 혜화동 소신학교에 입학시켰고 밤이면 어린 두 아들을 잠재우며 기도와 눈물로 원양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백의리 공소를 지켰다.
『성모님 잘 참을 줄아는 만(晩)이를 당신이 미리미리 보살펴 주십시오.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 입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만이가 신학대학 졸업 할 즈음이었다. 그때 넷째 홍이는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어머님 불효자를 용서하세요.』하며 그 큰 두 눈에는 굵은 물방울이 맺힌다. 『너 왜 갑자기 이러느냐』내 가슴은 무척 뛰었다.
사실 한아들을 신학교에 보낸 후 눈물의 기도는 한 여인(女人)의 숙명처럼 험하고 무겁게만 느껴오고 있었는데 또 홍이가 그 길을 가겠다고 당당하게 나선 것이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하느님께 약속했습니다』하는 홍이의 말을 듣고 별안간 머리에 떠오르는 말은『너 그때 나에게 아들 절반을 바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하는 음성이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주님께 용서를 청했다.
『주님께 드린 언약을 잊고 제 욕심대로 잠시 생각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새 학기에 홍이는 가톨릭 신문에 광주 가톨릭대 수석 합격자로 실렸고 각처에 산재한 공소교우들이 전교회장 아들이 또 신학교에 갔다고 축하장 축하금을 보내왔다. 그런데 고교 다니는 막내 녀석이『어머니 저도 신학대학 갈래요』한다. 나는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해『그러나 너는 아직 어리다. 사제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데 좀 더 생각해보자』고 말 끌을 흐렸다. 5남 1녀 중 절반을 바치겠다고 했는데…
주님께 드린 것은 없는데 그립고 보고 싶던 많은 사연과 사람들이 변함없이 이날도 약속처럼 찾아든다. 주님 다시는 헛맹세 말하고 벌을 받지 않도록 이 가족 이 교우들에게 언약의 중요함을 일깨워 주옵소서. 싱그러운 5월, 평생을 바라보아도 싫지 않는 녹음방초, 새벽이면 그 아래서 묵주를 굴리며 당신의 세계를 찬미하고 먼 곳 바다위의 그리운 분, 고통 받는 은인 지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한 기도를 드립니다. 착한 그들에게 풍부하신 은총으로 감싸 주시옵소서. 영원한 여왕 이어!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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