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에서 죽은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그는 수고를 면하고 쉬게 되리라』(묵시록4, 13) 운석장면 박사는 1966년 6월 4일에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하느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아 영원한 휴식 불멸의 빛에 비추어지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4일은 그의 서거 20주기였다. 우리는 20주기에 즈음하여 진심으로『주여, 그에게 편안을 주시고 끊임없는 빛을 그 위에 비추소서.』라고 기원 하는 바이다.
돌이켜 보건대 그의 죽음은 민족적 위기에 처한 난국을 상징하듯이 국가적 민족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5ㆍ16군사 쿠데타의 주역들에 의하여 자기 자신과 정권을 무능하고 부패한 것으로 낙인찍혀 참을 수 없는 치욕을 그는 감수하여야만 했었다.
이에 대하여 운석은 그의 인생회고록에서 『나의 덕이 모자라고 신앙이 부족하여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으니 하느님께 사죄하고 나로 인하여 이 나라 백성이 입은 피해를 하느님과 국민이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 우리는 5ㆍ16에 관해 할 말을 많이 가지고 있다. 탈권의 원인이 되는 5ㆍ16군사쿠데타를 냉철하게 평가하여 과연 장내각이 총 칼에 의해서 쓰러져야만 했는가를 규명하여야 한다.
민족사적으로 민주주의를 꽃피우려 했던 민주주의 선구자가 아니였던가를 밝혀야 한다. 내각책임제의 장내 각이 무너진 후 어떤 정치형태가 나왔던가. 사실 군사적 독재의 길을 걷지 아니했던가.
오늘날 민주화를 외치는 개헌의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국가가 위기에 처할수록 민주주의를 굳세게 건설하여야 한다.
운석의 20주기에 즈음하여 목숨이 무엇인지 구차스러운 생명을 이어가는 무리는 민주당 내각 장정권의 실체를 역사 앞에 적나라하게 있었던 그대로 밝힐 때가 왔다고 본다.
특히 운석이 경건한 신앙심에서 겸허하게 자기 스스로의 부덕과 신앙부족의 소치로 돌리고 통회하는 마음에서 하느님께 사죄하며 국민의 용서를 바라는 이면의 숨은 뜻을 밝히는 것은 더욱 중요한 것이다.
정치적 행동 하나 하나에 신앙의 차원이 미치는 운석의 평신도 사도직을 밝히지 않고서는 그의 생각과 행동과 말을 밝히기 어려울 것이다.
그의 신앙은 일상성(日常性)에 뿌리박은 것이다. 일상생활은 그 자체가 신앙생활이고 또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일상생활이었다는 말이다.
그의 어떠한 인간적 사회적 정치적 행동이든 간에 신앙의 현실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참으로 일상성에 뿌리박은 운석의 신앙은 그의 생각과 행동 가운데 충만하고 있음으로 해서 모든 것이 신앙의 책임에서 우러나오는 그리스도 백성의 사도직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충실한 증인으로 생애를 일관한 운석은 일상생활이나 정치생활을 모두 다 가톨릭 시즘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제 탄압하의 교회보호, 해방 후 미군정에 참여, 한국독립의 UN 승인활동, 6ㆍ25동란 때의 조국수호, 민족의 민주주의 정부수립 등 운석의 발자취를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는 운석이 직접 경험한 정치 생활의 총결산으로써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정치인들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을 두려워하여 그 뜻을 받들게 되어야 이 나라가 행복스럽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정치인들이 하느님을 무시하고 시속(時俗)을 따르면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울 것이다』라는 경구야말로 오늘의 정치인뿐 아니라 장래 모든 정치인들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권력과 물력에 사로 잡히기 쉬운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취약점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가장 하느님의 뜻에 거역하기 쉬울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무시하는 함정에 빠지기 마련이다.
우리 조국이 민주화에의 길을 걷는 것을 민중이 바라는 것도 집권자와 그의 주변인물들이 권력과 물력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뜻에 따라 봉사하는 것으로 자기를 바치고 민중의 행복을 위해 민중을 주인으로 아는 참된 정치가 나오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운석은 그리스도의 정신, 즉 복음적 정신에 따라 정치를 하려고 노래하였을 뿐 아니라 복음의 빛을 정치라는 일상성 안에서 비추었던 참된 봉사의 정치인이었다.
실패한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복음의 정점에서서 부정의 길을 택하지 않았던 의인으로서의 정치인을 지향했고 평신도의 사명을 수행했다.
운석은 영광의 시대와 심의의 시대를 따질 것 없이 언제나 똑같은 신앙생활을 변함없이 일상성 안에 깊이 뿌리내렸던 사람이다.
운석의 서거 20주기를 맞으면서 하루속히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의 전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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