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가「종교적 동물」이기 때문에 교회가 할 일은 인간에게 신앙을 가지도록 권장하는 일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일과 신앙생활과의 균형을 잃지 않도록 지도편달 하는데 있다는 뜻의 말을 체스터론은 한 일이 있다. 이것은 진리는 질서와 다를 것이 없다고 하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적 사상과 공통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균형은 자연스러운 것이라야 하고 객관적이라야 할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교회는 인간과 자연을 다시 발견했다는 당시의 휴메니즘적인 새로운 예술 풍조와 균형을 취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그러나 교회는 새로 발전하는 자연과학 사상과는 균형을 찾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고 이단시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아닌가 한다. 이미 신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인 정서로 굳어진 지구 중심의 천동설을 정반대의 지동설로 바꾼다는 것은 신앙을 동요시키는 일이라 해서 갈릴레오를 억압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는 즉, 객관적인 사태를 솔직히 보지 않고 권세를 휘둘러서는 균형도 질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천문학은 천문학으로 따지고 망원경은 망원경으로 대항했어야 균형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진리는 만인의 것이니 누구에게 빼앗길까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권세를 가지고 옹호하는 진리나 질서는 이미 허수아비 같은 것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갈릴레오는 간단한 실험 하나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을 뒤흔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오래 된 어마어마한 권위도 엄연한 사실 앞에는 빛을 잃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런 과학정신에 대해서 당시의 지도자들은 눈을 가리려고 했던 것 같다.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으로 위협하는 대신에「로마」의 한 모퉁이에 천문학 연구소를 설립하고 예술가들을 옹호하듯이 과학자들을 옹호했더라면 오늘날 같은 불균형을 초래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고「로마」는 과학의 중심지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일에「자본론」을 맑스가 쓰지 않고 성 토마스 같은 이가 썼더라면 세계사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보는 마리땡의 말도 생각나지만 이미 역사적인 사실로 된 것을 이제 와서 소급해서 이러니저러니 해보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르네상스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하는 것과 같이 갈릴레오 사건도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세기에 단위의 생물진화론을 당했을 때도 그랬고 20세기에 산아제한문제가 대두했을 때도 근본적으로는 지동설 때와 다를 것이 없었다고 하겠다. 항상 뒤졌고 소극적이었고 당황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마치 손거울을 처음 본 시골 부인네 또는 라디오나 TV를 처음 대하는 시골 할아버지들 같이 그 후면에 무엇이 있어서 혹은 그 상자 안에 무엇이 감추어져 있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소동을 벌이듯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런 일은 앞으로는 없으리라고 아무도 다짐할 것이다.
여러 가지 까닭이 있겠지만 자연과 초자연을 지나치게 밀착시켜서 생각하는 데도 커다란 원인이 있지 않은가 한다.
이러한 의인관적인 우주관은 르네상스 시절의 조형예술의 표현 양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닐까. 성부를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 모습으로 상상하다보니 우주만물이 모두 그런 식으로 머리 속에 새겨지게 된 것이 아닐까.
어려운 것을 참으면 복을 내리고 그렇지 못하면 벌을 받고 하는 식으로 오늘날은 자연과학적인 우주상이 예술적인 표현까지 지배하고 있다. 아무도 근대 초기와 같은 협소한 우주상을 가진 이는 없다. 말하자면 그리스도교적인 우주상은 현대 과학의 우주상보다 뒤지고 있다. 이것은 현대 교회가 지니고 있는 커다란 불균형의 하나일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