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조나라의 서울이었던 한단 감단(邯鄲), 그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빠른데다가 맵시가 있었다.
연나라의 젊은이 하나가 한단엘 갔다가 그곳 사람들의 그 걸음새, 그 맵시에 홀딱 넋을 잃었다.
『내 기어이 저 행보(行步)를 배우리라』
한단의 걸음새를 익히고 익혀 일백번 고쳐 익힌 뒤, 젊은이는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그 젊은이는 한단식 걸음걸이로도 걷지 못했을 뿐더러 고향고국의 걸음새로도 걷질 못했다. 젊은이의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보행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낄낄대어 웃었다. 이를 가리켜「한단지보(邯鄲之步)」라 한다.
초패왕 항우의 우미인이나 당 현종의 해어화(解語花:말하는 꽃)였다는 양귀비나, 비운의 왕소군과 더불어 색(色)으로 이름을 남긴 월나라의 서시, 월왕 구천이 오왕 부차에게 미인계를 쓰고자 하였을 때 전국 방방곡곡을 뒤져 찾아 내였다는 서시, 그 서시에게 가슴앓이 속병이 있었다.
서시는 그래서 가끔 얼굴을 찡그렸다. 어떤 추녀가 있어 그를 흉내내며 덩달아 찡그렸다. 아마도 서시의 아름다움이 찡그림에서 온 때문이라고 여겼던 모양이다. 이를 가리켜 효빈(效顰) 이라한다.
이 둘이 모두 못난 흉내의 고사(故事)로서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된장이 똥내를 닮으려 함인지, 강아지가 천리마의 트로트 걸음새를 본뜨려 함인지 웃되 때로 소태맛을 깨닫게 한다.
세상이 그러한 세상인지, 개가 개처럼 짖지 않고 여우처럼 짖는다. 제 목소리로 말하질 않고 남의 바리톤으로 제 테너를 소리내고자 한다.
변신(變身)도 역사의 유행이란 말인가. 수십 년을 하루같이 시를 써온 소설가, 평생을 살아 올린 예술의 본성을 동댕이치고, 다 늘그막에 한단지보로 걸으며 효빈하는 시인과 소설가들의 이름을 보며 문뜩 생각하노니 이는 일요한담이 아니라 천년한담(千年閑談)이로다.
소설의 대가입네, 시인의 대가입네 하던 그들이 때 아닌 변신의 길을 가면서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마치 앙드레 말로의 일생을 사는 듯 한 착각에라도 빠졌단 말인가. 오호 통재라, 그 이름이 아깝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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