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교회 안에서 불우한 이웃을 돕는 운동이 갑자기 활발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그것은 지난 성탄 때와 이번 사순절을 통해 각종 이웃돕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은 물론 특별히 근자에 광주대교구의 완도본당과 함평 문장공소 재건을 위한 지원의 손길이 잇닫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이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원래 교회 자체는 가난을 본질로 삼고 동시에 가난한 이를 돕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고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먼저 전하셨고 또 실지로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먼저 구원의 손길을 뻗치셨다. 동시에 그리스도는 교회와 신자들에게는 가난을 참행복의 제일 조항으로 선언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이고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와 크리스찬은 마땅히 자신의 가난은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남의 가난은 찾을 수 없는 부채로 갚아야겠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본보 지난호에 보도된 안양천변 판자촌 교회의 기사는 실로 근래에 드물게 보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사건이다. 그것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2가 안양천변 판자촌 2천 세대가 철거 명령을 받고 있는 중 그 중 2백 세대가 교회의 주선으로 새로운 삶의 터를 얻어 집단 이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의 발단은 76년 1월부터 예수회 소속 죤ㆍVㆍ데일리 신부(한국명 정일우)가 양평동에「예수회 복음자리」라는 판자촌 교회를 열고 사목활동을 시작한 데서 비롯했다. 그러나 이 판자촌은 금년 4월 10일까지의 시한으로 철거 당하게 되고「복음자리」도 헐리게 되었다.
이 때에 데일리 신부의 사목활동에 큰 관심을 가져온 김수환 추기경의 이를 도와주는 주선으로서 50세대의 신자를 포함한 2백 세대의 주민들을 위해 택지를 마련해주고 연립주택 건축비도 융자해주어 시흥 땅 신천리로 이주 정착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먼저 우리는 데일리 신부와 서울교구장의 사목 처사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몇 가지의 시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그 하나는 그러한 빈민 판자촌에 한 사람의 수도회 신부가 용감히 뛰어들어 복음자리를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자에 복음을 전하라, 가난한 자의 벗이 되어주라는 말은 입이 닳고 귀가 따갑도록 되풀이되지만 사실로 옮기는 데는 너무나 둔감스럽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일우 신부는 이를 몸소 실천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실로 복음의 못자리라 할 수 있다. 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벗이 돼 주었다는 사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그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사목 실정을 볼 때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보다는 부유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이 기울어지는 경향을 종종 볼 수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다. 또 일반 신도는 물론이고 성직자나 수도자 가운데도 입으로는 가난을 강조하면서도 마음이나 재물에 있어서 청빈보다는 부요를 택하려는 기품이 간혹 없지 않음은 실로 앞날의 교회상을 위해 모두 다 깊이 반성해야 할 과제이겠다. 정 신부의 사목 자세는 바로 하나의 경종을 울려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겠다. 또 하나의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이 판자촌 교회를 끝까지 이끌고 나가 새로운 땅에 새로운 정착을 이룩하게 한 인내성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을「가나안」땅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과도 비슷하다고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착한 목자로서의 모범으로서 한 마리 양도 잃지 말라는 가르침에 그대로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50세대의 우리 안에 양떼와 1백50세대의 우리 밖의 미양들, 아마도 1천 명이 넘는 이 보잘 것 없는 무리들을 새로운 복지의 하느님 백성이 되게끔 이끌어가는 그 모습은 실로 장하다 아니 할 수 없다. 오늘의 사목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의욕 상실이나 좌절감 같은 것에 비해 참으로 사목활동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위안과 역려가 될 것이다.
또 서울교구로서도 77년도 사목지침의 하나로서 강조한 바「불우한 이웃과 함께」라는 큰 뜻에 아주 알맞는 표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얼굴인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판자촌 교회는 아직도 난관이 많이 놓여 있다. 각계각층의 많은 후원과 지원이 베풀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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