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1年之計 在於元旦」이라 했거니와 새해를 맞으면 누구든지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고 다가오는 한해를 설계하면서 새로운 결의를 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진지하게 살아보려는 이들의 자연스런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결심이나 소망들이 지나치게 의욕적이어서 과욕에 흐르거나 혹은 애당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어서 허망으로 그치는 딱한 경우들을 본다.
하루에 두 갑 이상을 태우던 담배와 거의 날마다 마시다시피 하던 술을 한 번 끊어보겠다고 제법 비장한 각오로 벽에다 붓글씨로「禁煙禁酒」할 계명까지 써 붙이고 친구들한테 공언까지 한 것이 작년 정초였는데 불과 두 달이 못가 이렇다할 뚜렷한 이유도 없이 스스로의 그 약속을 파계(破戒)해 버린 일이 있다.
금년 정초의 연휴 기간 중엔, 연말 정리다 망년회다 해서 좀 과로했던 탓도 있지만 어줍잖게 지키지도 못할 거창한 새해 설계 따위의 부담도 덜 겸해서 연사흘 동안을 꼬박 이불을 뒤집어쓴 채 보냈다. 그렇다고 용해의 벽두에 무슨 근사한 용꿈이라도 꾸어 보자는 속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랜 잠 속에서 막 깨어났을 때의 그 비몽사몽간에 감지되는 맑고 개운한 무사무념(無邪無念)의 심경으로 환히 밝아오는 새해의 햇살과 신선한 공기를 한 번 실컷 호흡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수첩 속의 전화번호ㆍ명함ㆍ크리스마스 카드ㆍ연하장ㆍ청첩장 따위를 차곡차곡 챙기면서 하나 같이 모두 친절했고 또 노상 신세만 끼쳤던 그 다정한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이 새해부터는 내 스스로 무언가 조그마하나마 이들에게 도움을 드리는 그런 세월이 되기를 기원하고 싶었다.
문득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다보았다. 불경기다 물자 절약이다 해서 얻기 힘든 달력이었지만 그림이 그리 야하지 않고 날짜의 여백이 시원하게 맘에 꼭 들었다. 생각난 김에 달력을 내려 식구마다의 생일날에 빨간 동그라미를 쳐 두었다. 회사일이 밀릴 때면 며칠씩 밤까지 꼬박 새워야 할적이 많아 언제 차분히 식구들 생일날 한 번을 본때있게 기억하고 차려 주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며칠 있으면 금년 첫 팀 회합 날이기도 하다. 내가 꾸르실리스따가 된 지도 벌써 1년 반. 그동안 매주 갖는 팀 회합에서의「실천표 검토」에 만년 미급생을 면치 못해 왔다.
『이번 주간에도 약속 사항 몇 가지를 못다 지켰습니다』
『그동안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란, 뭐 이렇다 할 게 없군요.』
주간 활동의 결과 보고가 매양 이런 식이어서 스스로도 민망스럽기 그지없다. 딱히 이 새해에『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운 시간』을 감히 노상 가질 순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리스도와 멀어지는 시간만은 가지지 말아야 되겠다는 결실마저 인색할 순 없지 않은가?
용의 해라는 병진 새해의 내 소망과 결심이 글자 그대로 용머리처럼 부풀었다가 뱀 꼬리 마냥 쓰러져 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위에 말한 내의 적고 소박한 소망이나마 알뜰히 익는 한해이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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