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공익 법인 관계 자료를 찾다가 늦어 반 쪽 미사나마 참예해야겠다고 명동에 뛰어갔다.
이미 강론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때 문득 왜 이렇게 헐레벌떡거려야 하는가? 대관절 예수님은 나에게 무엇이 된다는 것인가? 그리고 나는 예수님에게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하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의문이 떠올랐다.
10수 년 성당에 다니면서 스스로는 열심하겠다고 허둥된 세월이 아까울 그런 물음이다.
돌이켜보면 대학 1학년 성탄 때 성세를 받고 무던히도 바쁜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 …
또 나름으로는 제법 교리책을 읽었다고 은근히 자만도 하고 기도랍시고 가리지 않고 마구 외워 왔는데 …
교회활동에도 빠질 새라 끼어들며 비교적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안다고 과시도 해 왔는데 이 물음은 웬 말인가. 신앙에의 결단이 있을 그 지점에서 이미 해결을 봤어야 할 물음이 느닷없이 이제야 뒷통수를 치다니…
회의가 있어야 신앙이 클 수 있다고 한다. 일체의 의혹도 없이 신앙하는 것은 지나친 교만이거나 아니면 신앙에의 백치이다. 날로 자라는 게 신앙이어야 하는데 계기 없이 매일 무사안일로써만 타성에 사로잡혀서 어찌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기 도취적 신앙에 안주해 버릴 때 벌써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교묘히 자만심만 채우는 신앙은 위선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안이하고 편하게 살아볼까고 궁리나 하면서 주일 의무를 채운다고 신앙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를 안고 의문을 갖고 부딪쳐나가는-곧 문제가 있는 신앙이어야 참된 신앙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을 두고 더러는 나의 존재 이유라고도 하고 내가 닮아-같아져야 하는 본이라고도 하며 나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하는 분이라고도 한다. 또 나의 시작이요 마침이다-나의 실존의 이유요 목적이라고도 한다. 무엇인가 그럴 듯도 하면서 잘 모를 말들이다.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 했으니 따르면 그뿐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혼자 잘난 체 무엇인지 알아야 따를 것만 같으니 문제 치고는 큰 문제다.
간혹은 따르지만 대개는 아니요 못 따라요 라고 하면서 발버둥질 친들 아무리 벗어나도 결국은 그 손바닥에 있으니 …
그저 자기 정당화나 할 줄 알 뿐 아무 것도 할 수는 없는 극히 무력한 존재이니 그저 불쌍히 봐 달라고 매달릴 수밖엔 없다.
말로 하라면 못하는 게 없는 실제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어설픈 위선자이니 그저 용서하소서 라고 빌 뿐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문제의 해결은 커녕 더욱 머리는 넝마덩이 같아질 뿐이요 자신은 비참을 넘어 참담해질 뿐이다.
그럴수록 매달리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으니 님은 나에게 또 나는 님에게 어떤 근본적인 뜻을 갖긴 갖나 보다.
과연 나는 님에게 무엇이 되며 님은 나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김태술씨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 호부터는 권정신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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