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개항 1백주년을 넘기고 문학사의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 한 세기의 문학이 제대로 성장해 올 수 있었는가 하는 매서운 반성의 눈길로부터 한국 문학은 영광된 발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본다.
주체성의 상실기와 실국기, 그리고 인간성의 회복 과정을 통하여 우리 문학은 무엇을 해 왔던가, 또 할 수 있었던가에 대한 큰 물음 앞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노릇이다.
문학을 한다는 진지한 자세가 성자의 길을 걷는다는 자각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염두에 둘 때, 병진 개항으로부터 1백주년인 금년은 무엇보다 문학사의 정봉 수립, 곧 본원적인 인간 탐색의 작업으로 채워 나갈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근대의 기점을 개항 후 갑오개혁으로 잡느냐, 3ㆍ1운동 또는 8ㆍ15 해방으로 잡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학계의 정답이 미흡한 편이지만 우리가 진정한 근대문학을 생각할 때 그 기점이 육당 최남선이나 춘원 이광수도 아니며 신소설 또는 저 멀리 영ㆍ정조시대도 아님을 알 수 있다. 실학계의 작품이나 한말의 저항시(한시 포함) 그 문턱에도 이르지 못하는 천박한 의식의 축제가 일본화의 무드로 번창해 감에 따라 1920년 전후의 동인지 시대가 찬란한 개막을 하지만 정착 그것이 동학의「용담유사」나 단원 신채호의 역사소설 만해 한용운의「님의 침묵」한 권에도 미치지 못한다.
조국 상실시대에 회색의 언어 유희를 하던 일체의 모더니즘이니 주지시니 하는 문학적 실험작업은 민족 혁명이나 인간 재조를 거부하는 반역사주의의 흐름에 지나지 않았다. 주체적인 근대 의식 면에서 어쩌면 퇴각만을 거듭해온 형식의 지향-이것이 신문학 70년의 미몽이었던 줄 안다. 궁극적으로 인간을 대한 인식을 등한시한 결과 한국 문학은 70년대에 들어와서 근대성 추구를 비로소 본격화하게 되었다.
그것이 반드시 새로운 인간에 대한 신기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본질적으로 실현되어 보지 못한 근대 사회에 대한 염원과 아울러 근대 인간의 확고한 터전(傳統) 위에서 범 세계적 현대를 살게 마련인 현실적 요청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 75년(도)의 특징은 그토록 기승했던 현실 참여 문학이 결국은 그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사실에 있다. 그것은 정치적 반항으로 사방에 이름을 떨친 바 있는 한 젊은 시인의 한마디「정치와 문학은 하나」운운의 발언에서 비롯된다.
『 … 정치적 실현을 위해서만 문학은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75년 12월 30일 한국일보 원형갑「文化年評」
『 … 그러나 그 작가의 식이란 것이 예컨대 사회 개조 따위에 치우치게 될 때 문제가 생겨요. 적어도 문학은 사회 개조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입장에서는 탈피해야 할 거예요』
-76년 1월 9일 중앙일보 김동리「元老와의 對話」⑤
『그런 표현 방법은 사설이 해야 합니다. 이런 각도에서 표현의 자유를 본다면 오늘의 상황에서는 상징적인 표현 방법을 포함 무한한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나는 봅니다』
-76년 1월 10일 동아일보 박종화「새해 안녕하십니까」
연말 연초에 쏟아져 나온 이러한 견해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승객들은 철로에 나와 앉아/봄별에 가난을 늘어 쪼이지만/염전을 쓸고 오는/바닷바람은 아직 맵차/산다는 것이 갈수록 부끄럽구나.
-신경림「君子에서ㆍ抄」75년 8월 현대문학
이러다가 점점 답답해지고/이러다가 점점 허물어지겠구나/도대체 산다는 것이 죽는 것보다/어렵다면야/어떻게 눈 뜨고 있겠느냐 (중략)/이러다가 온 날이 겨울이 되면/밤과 낮을 누워서 보내란 말이야/흉몽이나 넘치도록 꾸어 가면서/밤과 낮을 누워서 보내란 말이야/이러다가 별똥처럼 사라지며 한마디도 말 못한다면/영혼은 어디에서 흐느껴 울고/어디에 기대어 잠들 것이냐/어디에 기대어 잠들 것이냐.
-양성의「日記」. 도대체 한마디인들 제대로 말 못하는 분위기에서 산다는 것이 갈수록 부끄러운 시인의 양심적 문맥이 조금도 허구에 젖어 있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具常文學選」의 논조를 빌던 장인적 형식주의자들에게는 정치와 문학이 별개의 것이고, 사회 향상과 무관하며,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는 망발이 합리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 어려운 시대에 사제적 내면을 중요시하면서 인간 탐색에 몰두하는 문학인들이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 어떻게 찾을 것인가. 돌이켜볼 때 1975년도에는 자그만치 근 3천 편에 가까운 시 작품이 쏟아져 나왔고, 흔히 우회적 수법이나마 발표량에 있어서 소설도 폭주현상을 보였으며, 「文學과 현실」「詩와 科學」「한국 現代 詩論」「文學史와 批評」「求道의 언어」「狀況 文學論」등 주목할 평론 분야의 저서들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1976년도의 문학적 출범의 신호는 전일적 삶을 추구하는 본원 작품의 형상화와 이론의 정립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망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모두가 상기한 문제라고 믿어져 힘찬 전진을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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