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약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약이었으면 얼마나 더 좋을가. 새로 약을 구하러 다니지 않아도 좋고 새로운 약을 연구하는 노력도 필요없고 무슨 병인가 진찰하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고 그 병이 이웃 사람들에게 아무리 전염한다 해도 걱정할 까닭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이고 얼빠진 사람이 아니겠는가?
대원군 시대에 전해진 천주학은 이러한 효능을 지닌 약이었던가 한다.「빠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은 이 약을 전하기 위해서 만난을 무릅쓰고 목숨까지 바쳤으니 우리는 그 은혜를 높이 높이 기리며 영구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약에 시효가 있듯이 이 영원한 약에도 시효가 작용하는 것이 알려진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일까. 제2차「바티깐」공의회는 이 영원한 약에도 시효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뜻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당시「로마」에서는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다는 Aggjornamento (금일화)라는 말이 그것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전 세계의 모든 교회들은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어리둥절하는 혼란을 겪게 되었던 것 같다. 미국의 어느 노파도 격동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고 전통적인 교리가 변질되기 전에 일찍 세상을 떠났으면 행복하겠다는 말을 했다고한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열심교우들의 심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한편 지도층에 있는 분들은 교우들을 위로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영원한 약에 시효가 있을리가 있는가.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아니면 세상이 끝날 날이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렇게 많은 영혼들이 모여들고 행복한 얼굴을 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이 약효는 충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이런 약이 필요한 영혼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나 언제까지「아직도」속에 잠을 자야 하는가. 세속과 마귀와 육신을 끊고 자기 구령에 몰두하는 것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한 길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이러한 구령 제일주의로 많은 영혼들을 이끌어 왔다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하지만 교회는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뒤지고 만 것이다. 시대에 뒤진다는 것은 이중생활을 극단화한다는 뜻이 되고 이 세상에 대한 발언권을 상실하고 발붙일 고장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은 어느 정도 천상과 지상의 이중 시민임을 각오하는 것이겠지만 지상을 포기하면 모든 뜻이 없어질 것이다.
「아직도」하는 사고방식은「비전」이 없다는 표시가 아닌가 한다. 만병통치약이란 교회만능주의 시대의 산물인 것 같다. 이제 교회를「하느님의 백성」시대와 사회 속에 살아간다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현실 속에 사는 것을 회복하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전교지방」이니「전교시대」니 하는 관념을 근본적으로 씻어 버려야 할 것 같다. 영원한 약이기 때문에 현실에 맞는 약이 되도록 새롭게 창조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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