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ㆍ개신교가 공동 번역한 신구약 합본 성서가 11일부터 첫 선을 보였다. 양교회가 성서를 공동 번역한 것은 이 성서 머릿말 첫 머리에 언급한 것과 같이『20세기 후반기에 있어서 기독교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깊은 의미를 가진 큰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그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고치는 데 애쓴 분들의 노고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그것은 번역에 착수한 9년 만에야 햇빛을 보건만 봐도 능히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할까. 이 공동 번역 성서에는 가톨릭이 정경(正經)으로 인정하는 구약 9권을「외경(外經)」이라 표기하고 있다. 특히 가톨릭용 성서에는「외경」이란 표제까지 달아 따로 덧붙여 제본했다. 외경이라면 정경이 아니라는 뜻이 아닌가. 따라서 가톨릭용 성서는 정경이 아닌 성경을 포함한 성서라는 말이 된다. ▲이런 성서를 가톨릭 신자들에게 배부할 수는 없다. 성서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며 신앙의 최고 규범이 아닌가. 그래서 깊은 의미를 가지고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으며 공동 번역한 성서가 발간되자마자 그만 발매가 중지되고 말았다. 가톨릭용 성서에다 가톨릭의 정경을 외경이라고 활자화하는 측이나 이를 묵인(?)한 측이나 한심한 실수를 한 것이다. ▲실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성서의 표지에는 또「가톨릭용」이 아니라「카톨릭용」이라 인쇄되었다.「다 된 밤에 코 빠진」격이라 할까. 이런 언짢은 기분으로 머릿말을 읽어보니「신구교」라는 말이 무려 7번이나 나온다. 가톨릭이 구교라면 가톨릭은 옛날의 종교, 쾌쾌묵은 종교란 말인가. 마음에 거슬리는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교는 어느 교파나 항상 새로운 생명으로 약동하는 종교다. 무슨 일을 하든 상대방의 기분을 의식하는 기본적인 예의부터 갖춰졌으면 한다. 유감ㆍ갈등ㆍ차질은 이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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