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ㆍ25가 들어있는 유월은 아프고도 슬픈 우리들의 「연사의 계절」. 점점점 이목구비가 또릿해져가는 청포도 알을 보면서 그 가장 길고도 무더웠던 여름날을 떠올린다.
기차지붕 위에까지 진딧물처럼 달라붙어, 우리는 왜 남행(南行)의 피란열차를 탔던가, 피란민 수용소에서 나의 어린동생은 그 하찮은 병으로 왜 죽어가야 했던가, 피란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의 고향은 철저한 폐허가 되어 푸르스름한 연기를 내며 왜 그렇게 암울한 빛으로 타고 있었던가? 여기저기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었던 죽음과 주검의 뜻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여고생들을 모아놓고 반공 연맹에서 나왔다는 한 사내 반공강연을 한다.
이 나라의 살길은 반공, 오직 이것뿐 어쩌구저쩌구, 가라사대 가로되 공산당은 이만저만한 놈들.
딴에는 혀에서 땀이 날 정도로 제법 「의사(擬似) 현하지반(懸河之辯)」을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이야기는 어느덧 반공의 일선에서 애쓰는 투사들에게로 옮아간다. 그러자 그 사내는 쳐댄다.
『이분들이야말로 반공을 위해 몸 바쳐 애쓰는 분들입니다. 복창!』
『복창!』 소리와 함께 그는 목소리에 불꽃을 담았다.
『안기부!』
여고생들이 복창한다. 「안기부!」
『보안대!』
여고생들이 복창한다. 「보안대!」
『경찰!』
여고생들이 복창한다. 「경찰!」
금기(禁忌)의 영역을 말하고 있다고 오해하지는 말라. 나는 그 방법의 졸렬함을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반공의 이 염을 왜 한 송이 들꽃처럼 심어주질 못하고 향기도 없는 조화(造花)로 심어주려 하는가.
새마을 지도자 전진대회를 한다고 네거리에 거대한 국화의 꽃 탑을 세워놓았다. 어느 해 늦가을 초겨울이었던가 그 국화(菊花)가 얼어 죽을 것을 근심해서인지 밤새껏 연탄불을 피워놓고 있던 광경이 떠오른다.
풀잎 아침이슬처럼 영롱한「고급이념」(高級理念)과 목적이라도 싸구려 방법을 쓴다면 그 빚은 바랠 수밖에 없다.
「선진」(先進)의 목적은 있지만「선진」(先進)의 방법은 너무나 미숙한 게 아닌가 하고, 이 일요일 누구에게 한담이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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