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전에「한국 순교사화」를 출판사에서 출간하면서 그 책을 통독할 기회가 있었다. 이 책은 필자 김구정 선생이 필생을 바친 방대한 저술로서 그분의 정열과 신앙을 통한 성실한 기술과 또한 순교사 자체의 피어린 진실 때문에 충분히 감동을 주고 남음이 있었다.
그렇더라도 표현 형식에 있어서 순교 사실 자체를 단순히 기술함으로써 조금은 실감이 적고 호소력이 부족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역시 순교사를 토대로 해서 어느 작가가 보다 인간학적이고도 문학적인 리얼리티로써 서술하는 전혀 별개의 문학적인 작업이 기대되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한국 순교사는 우선 아무런 수식이나 허구 없는 사실 자체만을 놓고 볼 때도 인간에 대한 경의를 금치 못한다.
단순한 정치적인 시비와 시대적인 추세로 백성을 하루 아침에 떼죽음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위정자들의 우매함과 잔혹함을 놓고 볼 때 새삼 우리의 흘러간 역사에 대해 한심함을 금치 못한다. 그들은 백성의 처지를 살펴보려 하기는 커녕 사건의 실제를 규명해보려 하지도 않고 서양 의도가 더럽고 악하고 흉하다고 단정한다. 사도(邪道)요 무군무부(無君無父)라고 통음(通淫)한다고 단정한다. 무고한 백성의 수없는 살육 끝에 민심이 흉흉하고 날이 가물어 백성이 굶어 죽게 되니 그 박해는 더욱 포악해진다. 천주교 신자라는 혐의만 받으면 백성은 땅에 발붙일 곳이 없이 전전하며 하루아침에 온 집안이 쑥밭이 되고 그러다가 붙들리면 장살 교수 참수를 면치 못한다. 그런데 이러한 박해를 당하는 신자들의 용감성이야말로 우리의 이성으로써 도저히 실감이 가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 앞에 얼마나 혼연한지 그들의 현세생활에 대한 미련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너무나 지긋지긋한 세상살이 때문에.
어떤 참수를 당한 순교자의 아내는 처형장에 숨어 있다가 한밤중에 남편의 시체를 훔쳐내다가 구덩이를 파고 남편의 동료인 다른 두 시체와 함께 각각 머리를 맞추어 가매장을 했는데 그러고 나니 희부옇게 날이 샜다. 훗날 박해가 멈춘 후에 그 시신들을 걷어다 올바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한국 순교사는 박해자의 잔혹성에서나 상대적인 순교자의 용기로서나 다같이 인간을 초월하는 경지에 들어가 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뿌리가 뽑힌 그 순교자들의 후손들은 그 후 오래도록 고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며 낙후한 천민 신세를 면치 못하지 않았을까.
또한 박해의 뒷그늘에서 드러나지 않은 이름없는 순교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들의 고난을 우리가 현실적으로 체득하고 이해할 수 없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아무리 선양한들 현세에 머물러 있는 우리로서 그 거룩한 희생에 미칠 바가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의 피의 순교, 그것은 한마디로 기적이며 어쩌면 그러한 기적은 다시는 더 있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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