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화 나는 일이, 화 나게 하는 일이 허다하다. 어떤 때는 성이 난 체하는 수도 있고 계획적으로 화풀이도 하며 또 정말 골이나 씩씩거릴 때가 있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그리고 가장 부서지기 쉬운 게 사람의 감성이라 화를 내는 경우는 대개 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때다. 어쩜 화를 크게 낼 것으로 기대하며 이야기할 때는 대범하면서도 아주 작은 일로 자존심을 건드리면 그 때는 폭발한다.
무엇이든 다 그렇겠지만 이 화도 유효 적절히 조절할 수만 있다면 크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우리 같은 범인은 지나치게 성을 내다가 항상 끝에는 손해만 보는 경우다. 골을 자주 그리고 쓸모없이 내어 덕 될 건덕지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누가 건드리기만 하면 불쑥 화가 치민다.
불뚝골이 난다. 어줍짢은 일 가지고도 화가 마구 치민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 분풀이한다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분이 터질 때가 흔하다.
그렇지만 이 화만큼 인간적인 것도 없어 일생 동안 화를 한 번도 안 내고 살았다면 그가 훌륭히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가능성도 없거니와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를 산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사람이라면 더러는 화를 내야 하고 또 화도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신병이라도 걸려 제 명을 다하지 못한다.
범인과 대인과의 차이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이 화의 관리 여부에 있다. 대인이 누구냐 하면 다른 아무도 아니고 이 화를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범인은 골을 낼 때 못 낼 때 가리지 않고 마구 내는 데 반해, 대인은 꼭 화를 내야 할 경우를 골라 낸다. 대범하다는 것은 알고 보면 별것이 아니다. 바로 분이 치밀 때 그것에 대범하면 크게 대범한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화라는 것은 전연 없어도 안 되고 또 남발해서도 안 되는 그런 것이다. 한 번 되새겨보고 내면 되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화나게 하는 일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며 또 때때로는 의식적으로 화를 내야 할 때가 있다. 곧 화란 시효 적절할 때는 반드시 내야 한다. 사회가 발전하자면 분노할 때는 분노할 줄 아는 성원을 필요로한다.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들만으로 구성된 사회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정체된 사회이겠는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생명력 없는 사회이겠는가? 공분을 느끼고 철저히 분노할 줄 아는 사람들이 없어서는 그 사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다. 공분이 없는 곳에 공의가 있을 수 없다. 의분이 없는 것에 참된 질서가 있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분노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 분노에 선행해서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는 분노는 파멸뿐이다. 용서와 관대가 있어 분노도 제 역을 다하는 것이다.
분노를 느낄 땐 분노하고 분노를 내야 할 땐 분노를 내는 것이 대인이다. 화를 내더라도 의식적으로 계획적인 화를 내면 그뿐이다.
대인이 어디 따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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