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에 와서 사회의 윤리 부재에 대한 개탄의 소리가 높아가고 무엇인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오늘과 같은 윤리 부재, 도덕 부재 현상이 빚어진 데는 많은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그 중에서도 물질주의적 사고의 팽배, 곧 금전만능사상에서 연유함이 크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이 윤리 회복이라는 문제는 정치와 떼어 놓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는 사회 전반에 미치는 정치의 힘이 거의 무소불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의 윤리성 회복에 앞서 정치의 도덕성 회복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정치도 일종의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경기라면 그 경기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어야 한다. 경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물론 그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에게도 만일 이 규칙이 무시되거나 적당히 얼버무려진다면 그땐 이미 경기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정치인에게도 지켜야 할 기본적 수칙이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물론 있겠지만 더 선명해야겠다는 것이다. 정말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수칙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해서「정정당당한 대결」파인 플레이다.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정정당당하다는 것은 감추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비겁하거나 비굴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최선을 다해서 승자를 결정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는 기꺼이 승복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승자도 승자 같지 않아지고 패자도 정신적 승자, 운운하는 그런 풍토가 되고 만다.
상대는 정당하게 받아들이고 그러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치 지도자들은 엄격한 양분법을 쓴다. 곧「올 오어 낫싱」적 선택을 강요한다. 네 편과 내 편을 엄격히 구분하려 하고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심상은 거의 대다수는 이편도 저편도 아닌 우리라는 공동체로 있는데 말이다. 구경하다가 묘기가 나올 때는 서슴없이 박수를 칠 준비까지 하고 있는데 억지로 편을 가르려는 데 무리가 따른다.
우리는 열심히 경기를 할 테니 잘 하면 잘 한다 못하면 못한다고 해 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말이다.
곧「예」와「아니오」를 분명히 해 달라고 해야 한다. 그러자면 정치인 스스로도 이 예ㆍ아니오가 분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니오에 더욱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
옳고 바른 말은 서슴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예라고 하는 사람보다 아니오라고 하는 사람을 더 귀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정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 긍정의 자유도 없다. 일방직인 긍정만은 이미 긍정이 아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긍정만이 판 치는 곳에서는 부정하기는 쉬워도 긍정하긴 어렵다. 부정하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지마는 긍정하는 것은 아첨이거나 어용으로 받아들여지고 말기 때문이다.
정치인이「파인 플레이어」가 되고, 다른 이에게「파인 플레이」를 하자고 할 때 사회는 윤리성을 쉽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되찾게 될 것이다.
결국 너부터가 아닌 나부터가 문제요, 너희들부터가 아닌 우리들부터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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