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탑으로 세운 하얀 정문 앞에 병든 자를 위로하는「새 삶의 예수」상이 서 있는 저 멀리 산기슭 숲 속에 옹기종기 자리잡은 나환자촌인 라자로의 마을은 마치 서양 어느 나라의 산골 별장 같은 이국 정취가 깃든 풍경이다. 이런 원경과 조금도 손색 없이 가까이 가보면 잘 가꾼 수목들 사이사이 아담한 건물이 여기저기 운치 있게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스테인드그라스로 장식된 아취 있는 현대식 성당은 산골의 정적 속에 고요히 묻혀 있어 보는 이 적어서 아쉬울 지경이다.
그런 속에 지팡이를 짚은 눈 먼 환자를 보다 성한 환자가 이끌고 간다. 어느 일본인의 회사로 지었다는「고마움의 집」이라 새겨진 양옥집엔 중환자인 결핵 환자들만이 따로 격리되어 있었다.
얼굴이나 손의 형상이 거의 허물어져 표정도 없는 얼굴이지만 몹시 반가운 듯 손님을 대한다. 그 중 다미아노 노인은 1950년 캐롤 안 주교님이 이 마을을 설립했을 당시부터 있었다고 한다. 초창기의 어려운 시절 그 후 오랫동안 이 외딴 산골에 묻혀 병고와 가난과 외로움을 겪으며 살아왔던「라자로 마을」의 산 역사로서 그는 늙고 무너진 육신으로 남아 있다.
그동안 가장 잊을 수 없었던 일이 무엇이냐고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언젠가 이곳에「로마」로부터 라이트 추기경님이 오셨습니다. 그 추기경님이 저희들을 보고는 일일이 악수를 하고 어떤 이는 품에 안아주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에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3년 전「바티깐」성직자성 성장관 라이트 추기경이 다녀갔을 때의 이야기다.
이 말을 듣고보니 어쩌면 이들 환자에게 무엇보다 불행한 것은 그 병 자체보다 자신이 모든 사람 형제 부모한테조차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처지에서 이런 인간적인 대접을 받았을 때 그들은 세상엔 이럴 수도 있구나 싶도록 감격했던 것이리라. 이것은 그리스도가 세상에 계실 때 거리의 불쌍한 병자를 연민과 기적으로 낫게 하셨을 때 그들이 느낀 감격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인간을 진정으로 동정하기란 그리스도가 물 위를 걸어가신 기적만큼 어려운 것이다.』시몬느 베이유가 한 말이지만 사람이 이웃을 제 몸 같이 사랑히기란 참으로 어렵고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사랑은 곧 기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매말랐으나 이런 사람의 기적은 오히려 이처럼 가난과 병고와 외로움이 있는 곳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세상의 아름다움을 믿게 한다.
『우리가 뿌린 사랑의 씨앗은 멀지 않아 싹 트리라』마을 어구 석축에 새겨진 이 말을 처음 보았을 때 아담한 이 마을은 많은 은인들의 희사로 이루어진 것이구나 생각했더니 이 마을을 떠나면서 이 말 뜻은 또 하나의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병고와 외로움과 가난과 수모를 참고 살아온 이 마을 사람들의 착한 마음씨와 희생이 오히려 이 세상을 구하는 사랑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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