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금 사정(査定)이 있으니 나와 달라는 본당 신부의 명을 받고 본당 사무실에 나갔다. 영세한 지 불과 서너 달밖에 안 되는 나에게는 어느모로 생각해 보아도 과분한 은전이었다.
제일 먼저 찾아온 손님(?)은 소위 태중교우요 몇 대째 믿어오는 구교우에다 순교자의 후손이라는 자랑을 여러 차례 들려준 장본인이었기에 기대가 컸다.
『잘 오십시오. 새해에는 교무금을 얼마나 내시겠습니까?』
『교무금을 내는 것는 우리 신자들의 특권이고 본분 아닙니까. 성의껏 기쁜 마음으로 내야지요』
과연 구교우답다고 생각하면서 내심 흐뭇하고 마음 든든했다. 사회적인 지위도 지위거니와 필자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 소득에 상당한 부동산까지 가진 그분이었기에 기대를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는데 막상 내겠다는 액수는 필자가 내겠다고 신고한 액수의 반도 되지 않는 데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방으로 권했으나 막무가내다. 마지막 절충 방안으로 끝다리를 반올림해서 아구를 맞추자고 했더니 절대 그럴 순 없단다. 담배 몇 갑에 불과한 액수요 대포 몇 잔 참으면 될 일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우기다니 … .
하는 수 없이 그분의 주장이 관철된 셈인데『교무금을 더 낼 바에야 차라리 조금 더 보태 미사 한 대 청하겠다』는 그분의 말이 며칠을 두고 아니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물론 세금도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교무금을 세금으로 그릇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되도록이면 교무금은 엄살을 부리고 우겨서라도 적게 내고 미사 한 대 청하는 게 현명한 처사라는 얄팍한 살얼음장 같은 생각이 풋내기 신입 교우인 내 비위를 뒤틀어 놓았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무금과 주일 헌금에 정성을 쏟는 반면 미사 예물에 대한 관심에서 멀어진 자신의 외고집을 탓하면서도 교구 운영의 큰 몫이 되고 있다는 미사 예물과 그리고 교무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 하고 넉두리를 해 본다.
독자 논단은 애독자 여러분의 난입니다. 교회 내의 건설적인 제안이나 비판이면 무엇이든지 환영합니다. 원고는 2백 자 원고지 5~7매 정도. 채택된 분에게는 소정의 고료를 우송해 드립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투고를 바랍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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