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생각을 나타냄에 있어 그 수단이 어찌 하나뿐이랴.
손짓을 나긋나굿 부드럽게 하여 사랑과 온유함을 담아 낼 수도 있고, 발짓을 우악스럽고 뻐세게 하여 강포점유 (强暴占有)를 드러낼 수 도 있다.
눈 꼬리를 가늘게 찢어 흉중의 파고 (波高)가 심상하지 않음을 나타낼 수도 있고, 벌거벗지는 않았으나 몸짓을 천하게 하여 본래의 품은 생각이 시궁창같이 더러웠음을 은연중 말할 수도 있다. 여자라면 화장으로 우미(優美)와 요염ㆍ간교의 뜻을 함께 말할 수 있고 머리 모양과 입술의 빛깔로도 그 지향하는 바를 다소는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옷차림이 이들에 못지않게 그 무엇을 조금은 나타낼 수 있고, 웃음 또한 그 쓰고 달고 밝고 어둡고 두텁고 얄팍함에 따라 사람의 심중을 오묘ㆍ현묘하게 밝힐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생각을 나타내는 수단에는「말씀 」이 으뜸이니, 사람을 사람으로 있게 한 공을 말할진대 이 말씀ㆍ언어를 어찌 빼놓을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 재삼 느끼는 바이나「나라말씀(國語)」이 말씀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이 나라의 말씀은 드세어지고 거칠어지고 경박해지고 뻑뻑해지고 의미 없이 나긋나긋해졌는가 하면 괜스레 달콤해졌다.
웃것들의 말씀은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살기(殺氣)와 귀기(鬼氣)를 띠고 있고, 공연히 힘을 듬뿍 주어 아랫것들의 오금을 저리게 한다. 「크고 화려하다」고 호돌갑을 떨면」 그 뒷면과 속에는 옹졸하고 작은 생각이 깃들여져 있게 마련이고,「우리 하나가 되자」라고 말을 하면「안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이 반드시 숨어있게 마련이다.
부드러운 말씨보다는 끊어지고 강퍅한 한자어를 써서 으스스 소름을 돋게 하고 참고 참아서 우리 모두가 「따뜻한 서로」가 되자고 하기 보다는 마침내는 참지 못할 것을 겨냥하고 으르렁대니 자연 그 이빨이 드러난다.
낱말 하나를 갈고 닦아 가려 쓰고, 낱말하나에 봄바람을 담음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여 천국을 세우는「가나다」임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
이 증세가 깊어지면 가라사대「악성 언어종양」이 되어 치유하기 어렵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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