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톨릭 신자들은 인정이 없고 냉정하다고들 한다. 이것은 곧 이웃 사랑 실천을 망각한 채 자기 성화에만 충실하면 그뿐이라는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적 자세를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이 글은 어느 한 신자가 P 신부와의 대답에서 이러한 신자들의 개인주의적인 신앙 태도를 보고 느낀 점을 병자의 체험을 통해 밝힌 글로서 현대 교회사목의 헛점을 여실히 보여주며 가톨릭인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편집자 註>>
C=신부님 안녕하셨습니까?
P 신부=오 반갑습니다. 건강은 괜찮아졌나요?
C=네 주님의 부르심이 아직 멀었음인지 근근히 일어났습니다.
P 신부=오랫동안 병고에 난관이 얼마나 많겠소? 이렇게 건강한 모습을 보니 천주님의 은총을 받은 것이 분명하오. 우리 같이 감사기도 드립시다.
C=감사합니다. 저는 투병 중에도 교회 출판물은 탐독했습니다. 특히「가톨릭시보」와「교구 주보」받아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P 신부= 그렇지요. 병석의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기도와 독서가 제일이니까요.
C=그래도 신부님 저는 너무나 고독했습니다.「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앓는 자를 위로하라」고 가르침을 받은 우리들이지만 저는 참으로 외로왔습니다.
P신부=그렇게도 적적하셨나요? 좀 자세히 말해 보시요.
C=병석의 수 년 동안 우리 아랫방에는 세 든 이가 있었습니다. 장부는 트럭 운전수고 오누이를 낳은 젊은 부부였지요.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부인만이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그 교회의 목사 집사 등 교인들이 십수 명씩이나 심방하여 가정기도 드리는 정신이 지극하고 그들의 찬송가 소리는 저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큰방의 천주교 가정에는 병고와 생활고의 신음 소리뿐인 것이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습니다.
P 신부=이해가 가는 이야기군요. 우리 가톨릭 신자의 병세가 바로 그것입니다. 오로지 자기 성화에만 충실하면 그뿐이라는 신앙생활의 자세 말입니다.
C=저는 그 후 소강(小康)상태에 이르렀어도 심경이 착잡하여 상당 기간 교회 문을 두드리지 않고 망설였습니다. 저가 만일 개신교 신자였더라면 사회적 지위라도 높았더라면 그 오랫동안 그렇게도 외로왔을까? 하는 옹졸한(?)생각 때문에 말입니다. 한때는 차라리 개신교로 개종해 버릴까 하는 비뚫어진 망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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