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7월 5일 대구대교구 제8대 교구장으로 이문희 대주교가 착좌함으로써 대구대교구의 새로운 역사의 장이 펼쳐졌다. 이제 이문희대주교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14년 전 이문희대주교가 대구대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되었을 때를 돌이켜보자. 당시의 본보「일요한담」난에서 고(故)오용진 선생은 이렇게 썼다.『30대의 주교님이시니 한 10년「주교학」을 연구하시고 40대에 일하는 주교님이 되셔도 늦지 않을 것이다』▼과연 예언적 말씀대로 14년 동안「교구장학」을 연구하시다가 이제 대교구장이 되셨으니 모든 이의 기대는 더욱 큰 것이다. 사실 지난 30년 동안 서대주교의 시대에 대구대교구는 외형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했다. 부산과 안동 교구를 분할시키고도 20만이 넘는 신자와 80개 가까운 본당, 1백20여명의 사제, 그 외 각 기관단체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에는 이대주교의 숨은 보좌의 공이 컸음도 사실이다. 14년 전 이 주교를 보좌로 맞으면서 서대주교는『오늘이 바로 지금까지 동면상태였던 우리 대구대교구의 앞날에 따뜻한 꽃을 피울 경칩 날』이라고 했다. 서대주교의 치세 31년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14년이란 시기는 서대주교의 정신적 지도력을 바탕으로 해서 이대주교의 보좌가 빛을 발한 시기였다. 결과적으로 이대주교는 14년 간 주교수업, 아니 교구장 수업을 한 셈이 되었다. ▼지금까지가 외적 성장의 시기였다면 이제 내적확충의 시기, 문화의 꽃을 피울 시기가 도래했다. 대구대교구의 르네상스시대가 전개될려고 한다. 이제 한국 천주교회가 타락과 퇴폐일로에 있는 이시대의 정신적 등불이 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벌써 그 징표가 보인다. 이대주교의 청소년에 대한 깊은 사랑은 미래 지향적인 교회 상을 미리 보게 한다. 지적가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가톨릭 문화와 예술의 창달을 예견케 한다. 무엇보다 이시대의 버림받고 억눌린 자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이대주교의 진정한 가치를 엿보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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