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의 활동이 한창 요란스러울 때였다. 그 당시 여러모로 궁지에 몰려 괴로운 입장에 있던 A일보 기자가 어떤 모임에서 느닷없이 이런 물음을 던졌다.『사제단이 왜 저러는 줄 아느냐? 』그의 이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놀랍게도 그의 자답(自答)은『밀가루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제 전교용 밀가루가 없으니 정의구현운동으로 전교를 하려는 것이 사제단의 목적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었다. ▲좌중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양식(良識)을 믿고 있었다. 그래서『사회 정의구현을 위한 노력은 복음 선포의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이라는 정도의 자답이 나올 걸로 기대했었다. 아니면 적어도 이와 비슷한 해석을 한 줄로 알고 있다. 무의식적인 곡해인지 의식적인 모함인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언동에 모두들 말문을 닫고 말았다. ▲최근에도 이와 유사한 언동을 전해 듣고 놀란 일이 있다. 한때는 일부 젊은 대학생들의 우상처럼 된 적이 있던 문학 평론가요 언론인이며 소설가요 수필가인 분이『가톨릭은 힘에 아부해온 종교』라는 말을 했었다는 것이다. 중세(中世) 가톨릭은 전제 권력에 아부했고 현대에 와서는 노동자의 힘이 강해지니까 노동자에 아부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단다. 이 같은견해는 너무나 해괴하여 논평할 가치가 없겠으나 중세 때에 교회가 범한 과오는 솔직이 시인할 점은 없지 않다. ▲최근 분도출판사에서 발행한「자유에의 소명」에는 바로 이런 점을 시인한 구절이 있다.「한편으로는 교회가 여러 세기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인류에게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에 의한 참다운 인간의 길을…가르쳐 주었다.…그러나 반면에 권력과 야합하여 많은 과오를 범하였다…』(P157) 이처럼 과오를 인정하는 자세는 또 다시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자는 자세이다. ▲사회정의구현운동의 동기를 밀가루 탓이라거나 힘에 아부해온 습성으로 돌리는 언동은 상식 이하의 곡해요 모함이다. 그렇다고 교회가 이 같은 곡해와 모함에 개의할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과거의 과오를 용감히 시정하고 그리스도의 평화 구현에 진력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리스도가 주는 평화는 세속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그것은 현실에 대한 끊임 없는 도전 속에 수난의 가시밭길을 거쳐서 얻어지는 부활과 그 부활이 주는 평화다.」
(同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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