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의 부활절을 맞이하여 교형 제위 안에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축하하는 바이다. 그리고 이때에 고통 중에 있는 성직자 및 교우들을 위하여도 위로의 기도를 드리는 바이다. 해마다 맞는 부활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는 그때마다 부활을 축하하는 느낌과 의미는 다른 바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새삼 부활을 축하하는 본래적인 의의를 음미해 보려고 한다.
첫째로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승리로서 영광의 복활을 하셨는 데 대한 찬미의 뜻이 있겠다. 부활은 죽음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므로 부활의 신비는 사실 죽음과 부활의 신비인 것이다.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서 영생인 구원의 언덕으로 옮아가는 신비이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은 빠스카의 신비이기도 하다. 우리가 미사 때 성찬기도에서 사제가「신앙의 신비여」할 때 우린「주의 죽으심을 전하며 주의 부활을 굳게 믿나이다」라고 응답하는 이유도 바로 빠스카의 신비를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앙이지만 사실은 그 부활의 신앙에 더욱 중점이 놓여진 것은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서도 확증되고 있다.『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될 것이다』(꼬린토 전 15ㆍ17) 둘째로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 모두의 종말적 복활이 확보되었다는 희망의 재확인에 있어서 부활 축하의 뜻이 있겠다. 예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서 인간 부활의 첫째가 되셨고 따라서 우리 모두가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부활은 신앙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영혼의 토대이고 목표인 것이다. 이는『나는 부활이며 또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요한 11ㆍ25)고 하신 복음서에 의해서도 명백하다.
부활에 대한 희망이야말로 신앙인의 유일한 종국적인 희망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꾸어 말해서 부활에의 희망이 없는 신앙은 곧 헛된 신앙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희망은 항상 기쁨과 평화를 가져오고 또 희망은 영원한 것에 최종 목표가 있기 때문에 목전의 사물에 대해서는 구애되지 않는 청빈을 달갑게 살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희망에 사는 사람은 인내와 용기를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 정말 기쁨과 평화와 청빈 인내ㆍ용기를 갖춘 진정한 희망에 충만하고 있는가?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의 현상을 내포하고 있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이는 결국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의 부족이요 우리의 부활에 대한 희망의 박약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반성해 볼 필요가 절실하다.
끝으로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부활의 조인이 되겠다는 새로운 결단의 다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복활을 실제로 살아야 한다. 그것은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산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과 인간과의 분열에서 화해의 일치를 이루어서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새로운 부자성으로 만드셨고 또 인간과 인간과의 분열에서 역시 새로운 형제성으로 묶어주신 것이다. 이것이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진면목이고 생명력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생전에 주신 새로운 계명 즉 하느님을 사랑할 것과 인간 상호간의 사랑을 글자 그대로 사는 곳이 올바른 의미의 부활을 사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는 일치된 생활이 요청된다.
하느님과의 일치 그리고 형제들과의 일치 이 두 가지는 결국은 사랑의 양면
으로 표리일체가 되는 것이다. 교회헌장에서 교회를 일치의 성사와 같다고 표현한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한다. 일치를 이룩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생명인 것과 같이 교회의 일치를 생명으로 살아야 함이 분명하다. 이 일치는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신앙과 희망과 사랑이 복화 있게 그 넓이와 깊이를 가져야 하겠고 또 인간관계에 있어서 깊은 신뢰와 용서와 사랑으로써 화해의 유대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리스도의 부활을 살고 축하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의 교회를 바라볼 때에 너무나 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나 일치보다는 분열로 치닫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은 매우 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금년의 부활은 화해의 성년을 끝낸 뒤의 부활인 만큼 더한층 교회 일치의 긴요성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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