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당신의 나라가 임 하소서」를 교구사목의 표어로 제7대 대구 교구장에 취임하여 31년 동안 대구대교구의 발전과 아울러 한국교회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서정길 대주교가 지난 7월 5일자로 교구장식을 은퇴하였다.
돌이켜보면 서정길 대주교는 대구교구가 탄생하던 바로 1911년 독실한 구교우 가문의 2남으로 태어나 성 유스띠노 신학교를 거쳐 1938년 사제서품을 받고 화원본당의 초대주임신부로 발령받은 이래 청학동과 범일동, 상주와 계산동 주교좌성당 등의 주임신부를 역임하였고 또한 대구교구의 경리, 효성국민학교 교장 등 교회요직도 거쳤으며 특히 교구장으로 임명되기 1년 전 경남 감목대리구의 초대감목대리에 임명됨으로써 앞으로 교구장직을 수행하기에 필요한 풍부한 행정적이고 사목적인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교구장으로 임명받자 서 대주교는 복음전파에 전력을 기울이고 본당을 증설해나가는 한편 해외로부터 복음전파의 새로운 일꾼들을 수시로 불러들였다. 1962년 교계제도가 설정되면서 대구교구가 대구 관구로 승격됨에 따라 교구장도 대주교로 승격되었고 1984년에는 한국천주교회 창설 2백주년을 계기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성하가 대구대교구를 방문하고 친히 사제서품식을 집전하는 영광을 차지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서대 주교가 걸어온 길은 영광의 길이라기보다는 겨레와 더불어 고난과 애환을 함께한 길이었으며, 이 기간 동안은 한국교회와 우리 겨레가 다 같이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온 역사적 시련기이기도 하였다.
6ㆍ25전란으로 인한 폐허, 그 뒤의 무질서와 혼란, 갖가지 정치적 사회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원만하고 과묵한 성품에 뛰어난 판단력과 지혜로 오로지 당신의 사목지표를 따라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기만을 바라면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대교구를 확고부동하게 이끌어온 서 대주교의 사목적 업적은 여러 면에서 찬란히 빛나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교구장 착좌 때와 지금의 교세 한가지만을 비교해 보더라도 그간의 엄청난 발전을 쉽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구대교구 역사의 반쯤에 가까운 서정길 대주교의 교구장 재임동안에 왜관 감목대리구가 설정되었고 그가 초대 감목대리를 지낸바 있는 경남 감목대리구가 1957년에 부산교구로 승격되었으며 이듬해엔 안동 감목대리구가 설정되어 1969년에 교구로 분리 독립됨에 따라 오늘날 대구대교구는 관하에 부산 청주, 마산, 안동 등 네 개의 속 교구를 거느린 대교구로 발전하였다. 또한 서 대주교는 대구 교구민으로 하여금 한국가톨릭문화창달의 주창자로서의 긍지를 갖게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1927년 대구교구 청년연합회의 월간지인「천주교회보」로 창간되어 초교구적인 주간신문으로서 교회의 소식을 알리고 한국천주교회사의 산 증인의 구실을 하면서, 나아가 한국가톨릭문화의 토착화에 선도적 구실을 하는「가톨릭신문」이 되기까지에는 서대주교의 각별한 보살핌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 밖에도「이 땅에 빛을」이 창간되고 영남순교사와 교구총람의 발간 교구사 편찬실의 설치 등도 특기되어야 할 점이다.
아주 어려운 시국에 처해있는 우리 겨레를 위해 또한 선교 3세기를 향해 새로운 발돋움을 시작하려는 한국교회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저 대주교의 큰 목자로서의 경륜이 필요한 이 때 당신 스스로 교구장직을 물러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이 허전하다. 그러나 한편 교구장직의 영예로운 은퇴를 통하여 겨레와 교회에 대한 그분의 더욱 큰 사랑을 깨닫게 되어 우리들의 마음은 깊은 감명으로 가득 차 있다. 평소에 인재양성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던 서대주교는 특히 교구장의 교체에 따른 공백을 없애려고 세심한 배려로 후임자를 양성해온 점에서 또한 교황청의 권고사항인 교구장 정년제에 따라 한국교회에서 처음으로 모범을 보여준 점에서 우리는 그분의 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과 순종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이 겨레와 교회를 이끌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며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있는 온 겨레에게 한국 가톨릭교회가 그 모범을 보여준 일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서 대주교의 교구장직 사임에 따라 험난했던 과거의 큰 세대는 막을 내리고 새로운 세대에 의한 새 시대가 펼쳐지게 되는 이 시점에서 선임자의 뜻을 받들고 교구의 좋은 전통을 이어받아 온고지신의 자세로써 온 겨레의 복음화를 위해 더욱 이바지해 줄 것을 바람과 아울러 한국교회와 우리 겨레에게 민주화의 모범을 보여준 서 대주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교회 안의 민주화도 더욱 이뤄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끝으로 착한 목자로서 48년간 대구대교구는 물론 한국교회의 발전에 너무나 큰 이바지를 하였고 교회에 대한 큰 사랑과 순종에서 교구장직을 사임하는 순간까지 봉사와 모범으로 한국교회를 일깨워준 서정길 대주교께 존경과 사랑과 감사를 드리면서 대주교의 여생이 하느님의 크신 은총 속에서 늘 평안한 나날이 되기를 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