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랑졸랑 달리던 조랑말하나가 박살이 났다. 이름 하여 포니. 맞부딪친 차종은 천오백만원 어디쯤 한다는 그 이름 그라나다. 포니에 탔던 행복한 일가족은 즉사한 반면 그라나다는 찰과상에 타박상 정도로 멀쩡했다.
서너 백만 원짜리와 천만 원도 넘는 거인과의 박치기, 단순한 그런 의미일까?
차종(車種)과 그 값과 안전도 견고함은 어떤 함수관계일까? 왜 사람들은 소형에서 중형, 중형에서 대형으로 차종을 바꾸려 할까?
브리사는 가고 포니가 오고, 맵시나가 보이더니만 사람들은 이제「소나타」를 타고 들으려 하고「로얄살롱」의 궁전을 갖고 싶어 한다.
그라나다는 푸조의 눈치를 보고 푸조는 또 무엇의 눈치를 보는지 할금할금 강동거린다.
아파트는 아파하는 서민들을 외면한 채 날로 그 평수가 넓어지고, 여기저기 들어서는 단독주택은 진시황의 아방궁을 닮아간다. 열렸다 하면 각종 대회는 날마다 해마다 커지고, 터졌다 하면 사건규모도, 사고도 그저 대형이다. 시시껄렁한 도랑이나 내강 한두 개쯤의 오염으로는 식성엘 차지 않아서인지 전 가람(江)의 오염화를 향해 이미 그것도「대형화」가 되었다.
작은 나라에 태어나서 작은 것을 박차려 함인지 우리는 자꾸만「커짐」에만 눈독을 들인다.
작은 것에 대한 알뜰살뜰한 추구가 없다. 참새가 작아도 창공을 날고 매미가 작아도 천하의 여름을 노래로 장악하는 그 의미를 소중해 하지 못한다.
「좋아졌다」하면 곧「커졌다」는 의미로 둔갑하고 말았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최소(最小)」를 가꾸지 못하면「최대(最大)」는 보나마나다. 집안잔치도 알뜰살뜰 못하면서 어떻게 동네잔치를 한단 말인가.
최소를 경시하는 자가 만들어낸 최대의 작품은 아무래도 높이 살 수가 없다.
포니에 탔던 그 일가족이 그라나다와 부딪쳐 죽은 이유의 하나에「최소의 경시」가 들어있지나 않았는지 궁금하다. 끝으로 한마디. 차 이름 몇 개 나불거려도 내가 제법 외국어에 능통한 듯해서 기분이 몹시 지린 듯하니, 이것 또 어인 느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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