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교와 관계기관의 심한 규제로 마비상태에 있는 학생활동과 관련, 가톨릭학생회 전국 지도신부단 문교부와 문공부에 ①학교에서 가톨릭학생회 등록이 허용되고 가톨릭학생연합회와의 유대를 인정해 줄 것과 ②학생들의 미사 성경 연구 신앙 강연 에비자 교리 연합회 주관 행사 등의 종교의식에는 지도신부 책임하에 자유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건의했다.
각 대학 가톨릭학생회는 최근 부쩍 심해지고 있는 학교 측의 규제로 원활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학도호국단에 등록되지 못하여 활동이 마비되어 있는 학생회까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건의에 대해서 문공부의 담당관은 『가톨릭학생회가 학도호국단 체제 내에서 자유롭게 종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대책을 협의하겠다』고 했으니 높은 차원의 대책이 선행되기 바란다.
가톨릭 학생운동은 신자 학생들이 평신도로써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보존하면서 교회의 사도적 목적을 수행하는 운동이다. (평신도 교령 20) 즉 젊은이들에게 양심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육성하고 여러 환경에 복음의 정신을 침투시키는 운동이다.
당국은 가톨릭 학생운동에 대한 규제 이유를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이에 대처하기 위한 총력 안보에 미루고 있지만 가톨릭 학생들은 이미 교회로부터 국가관에 관한 확고한 가르침을 받고 있다.
교회는 평신도들에게『애국심과 시민적 의무의 충실한 이행으로 국가 공동선을 촉진하는 의무를 자각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평신도가 생존하고 있는 사회 공동체의 정신 풍습 법률 조직 등을 그리스도교 정신으로 충만케 하는 사도직은 평신도의 독점이요 책임이요 의무이다. (평신도 교령 14) 그러므로 학생을이 평신도로써 그리스도교적 정신으로 충만토록 하는 가톨릭 학생운동은 영성운동으로 신앙 증거이기도 하며 이는 국가적 견지에서 볼 때 정신운동으로 근대화를 촉진하는 국민 총화의 기초작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국가적 측면에서도 이 운동은 활발히 일반 학생의 운동과는 달리 가톨릭 학생운동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날 지도신부단이 대책회의를 열고 최근 가톨릭 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겪고 있는 사태를 종합하고 정부의 이해를 촉구한 것은 타당한 행동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학생문제를 다루는 교회의 태도가 너무 미온적인 데서 일반 신도로 하여금 싫증마저 느끼게 하는 현실을 놓고 차제에 교회 지도층이 학생운동의 수용성과 지도 체제를 갖추도록 각성 촉구할 필요를 느낀다.
1971년 전국 총련이 해체될 때 전국 주교회의는 학생운동을 교구 단위로 전개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 체제가 이상적인 체제인지는 미지수라고 하겠다.
주교회의는 학생운동의 지도 체제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밝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75년 학도호국단 문제로 전국 지도신부가 모여 전국기구를 주교단에 건의하였으나 오늘까지도 전국기구 사무국 운영을 망설이고만 있는 것을 볼 때 교회 문은 두드리는 학생들을 수용할 지도 체제가 갖추어졌다고 볼 수가 없다. 지도층은 남의 섬김을 받아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물질문명 속의 정신적 빈곤에서 목 말라 하는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것이다. 물질적 현대 문명 속에서 물질의 무게로 인하여 땅 속에 꺼져 질식할 것 같은 학생들에게 교회는그리스도의 생명수를 주어야 하며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받아들일 수용 태세를 갖추어야 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다. 대학생은 그들의 지성에 맞게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하며 그에 맞는 전문적 연구기구와 전담 지도신부 수녀를 배치해야 하는데 과연 교회는 전문기구와 지도 체제를 이루기 위한 해결 방안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해결 방안의 차선책이라도 모색하는가? 교회는 역사를 외면하고 존립할 수 없으며 젊은이가 자유롭게 성숙하고 책임 있는 평신도가 되어 역사의 핵심부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도해야겠기에 질문의 소리는 더욱 커지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학생들에게는 신앙의 핵심을 찾도록 권고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이며 그 항로는 그가 걸어간 길이요 그분의 복음은 에너지이다. 오늘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다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신앙적 책임을 절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당국에게 나타라는 큰 나무도 어린 싹의 성장을 전제로 하듯 어린 싹의 조그만 자극이 지속될 때 기형사회를 이를 뿐이라는 충고와 함께 교회는 체계적이며 포용력 있는 학생 지도에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 줄 것을 젊은이는 복음 안에서 오늘의 좌표를 찾고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갈 것을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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