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경 그리스의「코스」라는 섬에서는 난데없는 기적의 샘물이란 것이 터졌다 해서 야단법석이 난 적이 있다.
12명의 첫 증언자들이『이 물을 마시면 암도 치료된다』고 나팔을 불어대자 이 소식은 삽시간에 전 그리스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전국의 유수한 일간지들은 이것을 1면 톱기사로 보도하면서 덩달아 길길이 뛰었다.
『모든 병이 3개월 만에 완치!』라는 장문의 해설 기사를 통해 어떤 돌팔이(?) 의사는「코스의 물」을 암에 걸린「모르못트」에게 장복시켰더니 특효가 있더라고 장담했다. 또 어떤 땡땡이 연예인 하나는 그 물을 마신 덕으로 시력 장애와 파킨슨씨병을 고쳤노라고 능청을 떨었다. 그런가 하면「아테네」교외의「네오ㆍ리오사」라는 곳에서는 그 물을 실어 나르는 탱커 트럭에 물려 가겠다고 1천여 명의 군중들이 아우성을 치는통에 축구 경기장의 대문이 박살났다는 얘기였다.
결국 그리스 정부와 의학계에서 조사를 한 결과 모든 것은 멀쩡한 거짓말로 판명이 나고 말았지만 도시 그런 따위의 유언비어에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이 난리를 피웠는지 맹랑하기만 하다.
그리스 정교회의 엠마누엘 칼라이차키스 신부에 의하면 그 소용돌이 밑바닥에는 그리스 사람들의 뿌리 깊은 미신 숭배사상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그 나라 안의 점장이 총수는 무려 10만 명에 달한다니 90명 가운데 한 명은 점장이인 폭이다. 변심한 남편의 마음을 되돌리는 푸닥거리 한 번 하는데 어떤 무당은 13만드라크마라를 받았다니 약 2백만원짜리 굿인 셈이다. 그리고 남편의 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마약 한 봉 값은 5만원.
결국 그리스도의 복음이 희랍 땅에 전파된 지는 이미 2천 년이 됐지만 민중 속에 뿌리 박은 토속신앙과 샤머니즘은 여전히 끈질기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점은 멀리는 그만두고 우리네 한국 땅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의 뒷골목이나 주간지 광고란에는「운명 감정」에서「동양철학」이니하는 현대의 주술사들이 의젓하게 도사리고 앉아서 사람들을 울렸다 웃겼다 하는 것이다.
전국 사찰에는 산신각이나 칠성당이나 단군전이 모셔져 있는가 하면 얼마 전만 해도 계룡산에는 별의별 유사 종교들이 우글거리던 참이었다.
이러한 토속신앙에 대해 한국에 들어온 불교는 융화를, 유교는 천대를, 기독교는 적교를 나타냈던 것 같다.
절대신에 대한 최고의 바른 신앙으로서의 기독교가 천박한 자연종교와 미신을 배격하고 이 나라 의의의 계발에 기여한 바는 적잖이 크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는 비단 미신가들뿐 아니라 서양의 고등종교나 유교적 사회 인습으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산 끝에 가혹한 박해를 받기도 했다. 특히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했다는 것이 박해의 최대 원인 중의 하나였다. 이것은 사회적으로는 상이한 두 문명의 만남이 빚어내는 불가피한 갈등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기독교가 들어온 지 근 두 세기, 때마침 계룡산 식의 유사 종교와 사이비 기독교 분파들이 정화되기 시작했다. 이 문제에 대해 기독교 측이나 당국은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항이 있어야 하겠다. 천국항 티켓트를 판다거나 씨앗을 쫓는 푸닥거리로 민심을 현혹시키는 미신하고 비교적 순순한 형태의 토속적인 민간신앙이나 전통적인 인습과는 세심하게 구별할 줄 알아야겠다는 것이다.
후자에 대해서만은 교리상의 대립을 유지하는 테두리 안에서 하나의 민속학적인 문제점으로서 적절한 정책적 고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기독교가 동양의 토속적인 전통을 대함에 있어서는 17세기 스페인 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을 정복하고 길들이던 스타일이어서는 안 되겠다는 말이다.
이제 오늘의 한국 기독교는「외국의 문명」이 아니다. 우리 조상이 순교를 하면서 받아들여 우리의 얼과 넋 속에 침윤시킨「한국의 문명」이어야 한다. 토속 문명에 대한 교회 나름의 전문적인 대책과 연구가 활발히 시도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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