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바오로 6세는 4월 27일 추기경 21명을 추가 임명했다. 새로 선임된 추기경들은 주로 제3세계 국가 출신들이라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추기경단의 구성이 대폭 국제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국제화의 기미는 1958년 12월 15일까지 70명 선을 유지하던 추기경 수가 요한 23세에 의해 75명으로 늘어남으로써 엿보이기 시작했다. 1965년에는 바오로 6세가 27명을 다시 임명하여 추기경 수는 1백3명이나 됐었다.
▲추기경단의 국제화가 더욱 뚜렷해진 것은 1969년 4월 30일, 바오로 6세가 추기경 33명을 추가 임명했을 때였다. 33명 중에는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하여 개발도상국 출신이 11명이나 됐다. 그때 추기경 수는 1백34명이었다. 이번에 다시 21명이 임명되어 1백38명이 됐는데 이로써 1969년 이후 서거한 추기경이 17명임을 알 수 있다. 바오로 6세는 이번에도 7년 전과 마찬가지로 새로 임명된 추기경 2명의 명단을 발표하지 않았다. ▲명단이 발표되지 않은 채 임명된 추기경은 공산권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본인들이야 물론 추기경으로 임명된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비밀을 지킬 뿐이다. 명단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는 그곳 교회가 곤란한 입장에 처하거나 새 추기경이 박해를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명단이 공표될 때까지 추기경으로서의 특권을 누릴 수 없다. 그러나 추기경단에서의 선임 순위는 임명된 날짜가 기준이 된다. ▲추기경 제도는 그리스도에 의해 설정된 것이 아니다. 즉 초대교회에는 추기경이 없었다. 6세기에 이르러 신부 추기경 부제 추기경이 있었다. 주교 추기경은 8세기부터 존재했다. 원래 이들은「로마」와 그 주변에 있는 저명한 인물들이었다. 추기경단에는 평신자도 있었는데 가장 최근의 평신자 추기경은 19세기 때 지아꼬모 안또넬리 추기경이다. 그는 삐오 9세 치하에서 교황청 국무원 장관을 역임했다. 평신자가 추기경단에서 배제된 것은 1917년부터였다. 그 당시 반포된 교회법은「추기경들은 탁월한 학식과 신앙과 판단력과 능력을 갖춘 사제들이라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후 요한 23세는 추기경이 주교가 아닐 경우 모두 주교로 서품하도록 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추기경단은 교황의 중요한 자문기관이다. 특히 교황이 서거할 경우 그 후계자를 선출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문자 그대로 교회 중추 기관인 것이다. 여기서 개발도상국 교회가 대거 참여하게 되는 추세는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만큼 교회의 보편성을 현격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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