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보건사회부가「사회적 또는 경제적」이유를 들어 임신중절수술 허용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하는「모자보건법 개정안」을 공화ㆍ유정 합동 정책 심의회에 넘긴 사실이 알려지자 가톨릭 교회는 즉각적으로 이에 대한 강력한 항의를 표시하였다. 한국 가톨릭 평신도사도직 전국협의회는 4월 30일에 성명을 발표하여 문제의 이번 개정안을「살인 교사적 처사」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며 강력한 반대에 나섰고 주교단으로서도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심각히 협의할 뜻을 보였다.
가톨릭측의 이와 같은 단호한 반발이 영향을 주었음인지 정부와 여당은 이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오는 6월에 있을 임시국회에 넘기기도 하여 우선은 보류를 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미 1973년에 정부가 강행 통과시킨 현행「모자보건법」의 선례에 비추어 우리는 오는 6월에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리라는 전망을 갖기 힘들며 오히려 짙은 우려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이른바「모자보건법」이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는 낙태수술의 권장 정책이 지니는 불의와 불행의 내용을 그동안의 우리 사회 현실과 더 나아가 교회가 신봉하는 자연법 차원의 정의에 입각하여 숙고할 긴요성을 느끼게 된다.
흔히 요즈음 사람들은 가톨릭이「낙태수술」을 반대하는 것을 보고 비현실적 이상주의로 풀이하려 드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실상 가톨릭 교회로서도 각 가정의 환경적 필요에 의해서는 도덕적이고 자연적인 방법에 의해 자녀를 적게 낳도록 하는 조절 노력을 긍정하고 또한 이 노력을 의학적으로 선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기도 하다. 가톨릭의 이와 같은 가족계획 방안은 뒤에서 더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마저 방조하고 있는 낙태수술의 세태 풍조가 우리의 사회 현실 속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비근한 사례로서 최근에 재일동포 모국 방문의 행렬이 늘어난 다행스런 현상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현상은 그동안 재일 동포들이 북한 정권과 재일 조총련 조직에 의해 오도된 의식 상태를 교포들 스스로가 자각하는 역사적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과 대한민국 사회도 상대방의 일방적인 악선전과는 크게 다르다는 데에 자극 받은 결과이다. 과연 일부 유보되고 제한된 자유 안에서이지만 대한민국의 시민생활은 북한의 경우보다 생동감과 자유를 더 보여 주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 목표는 겨우 북한과의 대비에 급급하거나 안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본질적으로 정의롭고 진실된 사회를 부지런히 촉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본질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결핍되고 부조리한 요소들이 있음을 자인하게 되며 사회의 이 내면적이고 본질적인 부조리가 신속히 개선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공사주의의 테러리즘 앞에서 크게 위협 받는 처지에 떨어지게 될 것을 심히 우려하게 된다.
재일 동포들이 모국에 와서 조상들의 빛나는 문화 유적과 경제의 상당한 성장도를 보고 기꺼워 할 것이지만 한편 그들이 우리 신문의 사회면을 읽으면 무엇을 느낄지 심히 민망스러워지는 일이 있음을 정부 당국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한마디로「인명 경시」범죄의 만연 현실이다.
크고 작은 도둑질을 위한 살인에다가 이유 없는 반항의 살인까지 합쳐서 주로 청소년 세대의 범행으로 나타나는 인명 경시의 세태 풍조는 실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우려케 한다. 아무리 경제 수준이 성장하더라도 사람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여겨지는 사회는 결과적으로 지극히 불행한 사회이다. 그리고 이 불행한 인명 경시의 풍조는 이 사회의 가정에서 벌어지는「낙태수술」의 분위기에서 가장 심하게 오염된 정신의 소산임을 알아야 한다.
정부는 이른바「사회적ㆍ경제적 이유」를 피상적으로 보지 말고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부유층의 자녀들이 부모의 방탕과 사랑의 결핍에 반항하여 성적 문란을 저지르는 현상, 공장지대의 저임금 직공들이 하숙비의 실제적 사정에 의해 남녀 동거를 하여 미혼모가 많이 생기는 현상, 피임의 정당하고도 도덕적인 방법을 계몽 받을 기회에 접하지 못할 만큼 생계에 시달리는 가난한 가정들이 있는데 한편에서는 재벌과 고관 부류가 1억 원대의 도박판을 벌이고 있는 이 부조리야말로 바로「사회적ㆍ경제적」이유인 것이다. 다시 비근하고 우회적인 한 사례를 들거니와 최근에 역시「낙태」문제를 둘러싸고 이태리에서도 사회적ㆍ정치적 혼란이 있다고 하지만 그 혼란의 핵심적 요인은 여당이 이른바「록히드 뇌물사건」에 관련된 데에 있다. 이만큼 도덕적인 문제가 항상 핵심적인 문제로 귀착된다.
정부는 피상적으로 전반적인 국익이나 물질 생활 성장을 목표하여 통제적이고 때로는 신념 없이 변덕을 부리는 시책에 급급해서는 안 되며 인간 존엄 자유 책임 도덕적 힘에 바탕을 둔 공동선의 정신적 차원을 배우고 이해하고 시정에 활용하는 자세가 있어야 되겠다.
끝으로 다시 실무적 논의에 돌아와서 정부와 여당은「가족계획」에 관한 입법이나 개정안을 추진할 때 가톨릭에서 건강과 도덕 양면에 충족을 주는 방법으로 적극 권장하고 있는「자연주기법」(빌링스 법)에 대해 충분히 참작하기 바라며 가톨릭병원협회 가톨릭의사회 한국 행복한가정운동협회 등 이 방면의 선도 단체들로부터 충분한 자문을 받을 것을 우선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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