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로마ㆍ클럽은「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의 자원은 한계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인구 성장과 경제 성장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인류는 조만간 굶어 죽거나 공해로 질식 당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로마ㆍ클럽이란 세계 유수의 기업인들과 과학자ㆍ철학자들의 비공식적인 국제협의기구로 이탈리아의 제벌 아우렐리오ㆍ페체이가 창시했다.
세계를 컴퓨터로 진단한 끝에 뽑아낸 그와 같은 결론을 그 후 상당한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비판되었지만 적어도 그것이 무제한 물량적 팽창욕에 대해 내려진 준엄한 경고와 반성이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크다.
지난 주 로마ㆍ클럽은 세계를 다시 한 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미국「필라델피아」에서 3일간의 회의를 마치고 나서 발표한 보고서는 72년의「성장 억제론」과는 상반된「성장 예찬론」을 내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그 까닭을 페체이 자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원래 로마ㆍ클럽이「성장 억제론」을 주장한 까닭은 사람들을 겁주기 위한 전략적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그 덕택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어도 이제는 웬만큼 계몽이 됐기 때문에 앞으로는 빈부국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성장」을 추구할 단계라는 것이다.
그 새로운 방식의 성장을 그는「선별적 성장」이라고 불렀다.
선별적 성장이란 한마디로 부유한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성장은 줄여가면서 가난한 나라들의 성장을 도와 줘야 한다는 처방이다. 그렇게 하면 세계의 부와 생산 능력은 골고루 퍼지게 되어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경제적 상호 협력을 통한 세계 일가론이라고나 할까.
이어서 로마클럽은 몇 가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 질서의 재편이니 제3세계 개발을 위한 새로운 국제통화기금이니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에 따라 서독에서는 이미「그 나라 경제를 파손시킴이 없이 서독의 공업 생산품을 제3세계로 투입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아주 듣기 좋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제3세계「못 가진 나라」들의 자원 민족주의와 富의 평등화 요구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마당에 부유한 쪽의 석학들이 자진해서「도와주자」고 한 데에는 고마움마저 느낀다.
서독 하노버대학의 페스텔 교수와 미국 클리브랜드대학의 마세로비치 교수는 이미 컴퓨터를 사용해서 앞으로의 제3세계 각 곳의 개발 계획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어찌 컴퓨터뿐이랴. 가능하면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방글라데쉬와 사하라의 기아민들을 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인간 구원의 문제와 고매한 이타주의가 컴퓨터로 해결될 것이냐 하는 데에 있다.
뼈 속까지 침입한 인류 문명의 질환을 치료하는 데 고작 손가락 끄트머리를 매만지는 외과 수술로 되겠느냐 하는 아쉬움이다.
모든 병의 원인은 인간의 마음 속에 도사린 악의 씨앗에 있기 때문이다.「새로운 성장」의 패턴을 정착시키려면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야만 할 것이다.
로마 클럽의 어빈ㆍ라스즐로라는 철학자는 그 점에 대해 매우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량적 성장 윤리는 인간 본성의 표현이 아니라는 장담이다.
또 이타주의만 해도 그것만이 유일한 살 길이라는 인식만 보급되면 사람들은 이기적 필요에 의해서라도 그에 응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이기적인 이타주의」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귀의 또 하나의 함정일지도 모른다. 사랑에의 갈증에 못 이겨 모든 형제들과 더불어「겟세마니」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는 인류 가족의 화목이란 헛된 꿈이리라.
부활과 천상영복을 함께 누리려 하기 앞서 고난과 지상의 아픔을 함께 겪으려는 자세야말로 컴퓨터 천국론의 해독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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