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둘째 주말. 나는 더없이 즐거웠다. 가슴 속에 샘솟는 생의 환희를 느낄 수 있었기에 신앙인으로서의 기쁨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석간지에 보도된「인간애의 광명 선물」이란 기사를 본 사람이면 아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주님의 참사랑을 실천한 최요셉씨의 뜻에서 무엇인가를 느꼈으리라.
마흔여덟 살의 최씨는 예비역 중령.
7년 전 상처하고 2남 3녀를 데리고 작은 사업에 몰두해 오다 4개월 전 위암 진단을 받았다. 시한 인생을 살면서 가톨릭에 귀의하여 지난 12일 눈을 감기 전「내 눈을 불행한 맹인에게 옮겨 육신은 썩어도 내 눈은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고 유언했다.
고인의 뜻을 따라 나는 20대의 두 젊은이에게 각막이식수술을, 흰자위가 상했던 60대 노인에게는 공막이식수술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마쳤다.
한 번 세상에 왔다가 가면서 돈이나 다른 재산을 물리고 간다 해도 그 육신은 썩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최요셉씨는 참사랑으로 눈의 생명을 연장시켰던 것이다.
나는 새로운 빛을 얻은 사람들에게서 승천한 최씨의 눈빛을 발견했다. 그러니 어찌 아니 기쁠 수 있으랴?
작년 8월 유네스코 빌딩에서 난동을 부렸었던 사형수 윤모씨의 헌안을 빼다가 역시 두 명에게 각막이식을 시술하였지만 그때와는 다른 보람이 가슴에 흐르는 것이었다. 날 기쁘게 해 주는 것은 확실히 최씨를 통해 나타난 주님의 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가톨릭의대 부속 성모병원에 중앙안은행이 개설된 지 9년인데도 아직 눈기증 희망자가 1백 명이 못 되고 있다.
프랑스에선 50년대에 가톨릭 교회가 주동이 되어「교인의 참사랑운동」으로 헌안운동을 크게 벌였다. 요르단의 젊은 지도자 후세인 왕이 62년에 사후 안구 기증서에 서명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화제를 뿌렸음을 기억한다. 또 스리랑카(전 세일론ㆍ인도의 끝)에선 60년대 초에 전국 헌안운동을 벌여 3년간에 3만5천 명이 호응토록 했고 그동안 2천8백여 개의 안구가 세계에 공급됐고 우리나라에서도 갖다 쓴 적이 있다. 더욱이 전 대통령 세레네키아도 74년에 자신의 눈도 안은행에 바쳐 두 사람에게 광명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일본에서도 2차대전 직후 한 주둔 미군 병사의 제창으로 전국에 크게 번진 일이 있다.
그러나 오랜동안 유교사상에 젖어온 우리나라에선 身體髮膚 愛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하여 부모에게서 받은 귀중한 몸(머리털과 피부까지도)을 다치거나 상치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라는 윤리를 가르쳐 왔으며 이러한 우리들의 사고방식과 의식구조의 저력 때문에 이토록 우리나라에선 안구가 모자란다. 그러니 교인이 먼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여러분이 남에게서 바라는 그대로 여러분도 남에게 해 주시오(마태 7ㆍ12)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마태 19ㆍ9) 내가 당신들을 사랑한 것처럼 당신들도 서로 사랑하시오.
이것이 나의 계명입니다.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요한 5ㆍ12~13)…』이와 같이 천주교는 이웃과 친구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자신의 몸과 생명을 희생하여서까지 그들 형제를 도와주라고 참사랑의 실천을 명령하였고, 주님을 믿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였다.
우리도 이제는 교계가 헌안운동에 스스로 앞장서서 신자의 참사랑과 그 힘을 보여줄 때가 온 것으로 생각한다.
『내 몸은 죽으나 내 눈의 빛은 계승된다』고 하면서 숨겨둔 최요셉씨의 따뜻한 형제애를 우리 모두 구호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류도마씨께서 수고해 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김재호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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