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마리 트린 누 쿠에, 당년 76세의「하노이」대주교.
월남의 첫 추기경으로 임명된 분이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지난 4월 27일 추기경 21명을 추가 임명했다. 그 중 2명은 한 달이 넘도록 비밀에 쌓여 있다가 1명의 이름이「돌연 발표」됐다. 미공개된 2명이 공산국의 주교이리라는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월맹의 주교가 추기경으로 임명될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하노이」하면 우리는「평양」을 연상하기 때문일 것이다.▲보도에 의하면 5월 24일 추기경 서임식에서 트린 누 쿠에 대주교만이 주교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그만큼 준비의 여유가 없었음을 의미한다.「바티칸」국무원장관은 트린 누 쿠에 추기경이「하노이」당국으로부터 여권을 받은 것은「마지막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임식 하루 전에 겨우「로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출국을 서두르다 여행에 필요한 짐도 꾸릴 새가 없어 갈아입을 내의도 챙기지 못했단다. ▲그동안「바티깐」과「하노이」대주교의 추기경 피명을 공식적으로 양해했음이 분명하다.
이로써 교황 바오로 6세가 가톨릭 교회와「하노이」의 관계를 한결 공고히 다질 수 있는 계기를 잡은 셈이다.
동시에 공산 정권이 종교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선언한 바를 새삼 상기시켜주는 효과도 클 것이다.
이 같은 포교 전략적 이점 때문에「하노이」의 양해를 구하는「굽힘」도 감수했을지도 모른다. ▲작은 키에 회색 머리인 크린·누쿠에 추기경은 33세에 사제로 서품됐고 1950년에는「하노이」주재 교황 사절로 임명됐다. 그가 대주교로 승격된 것은 1960년 교황 요한 23세가「하노이」에 대교구를 설정했을 때였다. 그는 매우 권위 있는 성직자로서 월맹 당국에 대해 한 번도 자세를 굽힌 적이 없는 야무진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54년「하노이」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수만 명의 신자들이 월맹을 탈출했다.
그때 그는 성직자와 평신자들에게「하노이」에 남아 있을 것을 호소할 만큼 용감했다. ▲월남전 당시엔 많은 신부들이 체포돼 민간 재판을 받았다. 그 자신도 2년 간이나 자택에 연금 당했다. 월맹 가톨릭 교회는 남의 손아귀에 내맡긴 상태가 됐다. 그러나 종전이 되자 50만으로 줄었던 신자 수가 80만 내지 1백 만으로 늘었다. 교회의 사회적 위치에 제한이 없지는 않겠지만 월맹 교회는 추기경까지 모시기에 이르렀다.
동족의 탄압에 신음하는 북한에 올리브나무 가지를 선물할 날은 언제일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