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줄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단적으로 시성시복식의 수가 점차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성인이 줄어들고 있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극도로 세속화된 현대 세계에서 삶을 영위하는 오늘의 인간에게 그리스도를 따르고 모방한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졌다는 점과 종래의 전형적인 가톨릭 성인상에 대하여 관심과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형적 성상이란「속리」와「속성」의 두 세상에 대한 각기 다른 투쟁의 방법이긴 하다. 전자에겐 세상을 저주하고 이탈하려는 경향이、후자에게선 세상을 너무 죄악시하지 않고 이를 맞아 성화하고 정복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이 각기의 특징이라 하겠다.
물론 모든 시대는「속리」와「속성」의 조화에서 성인의 이상형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각 시대는 그 중 하나에 치우친 동시에 그것은 그 시대에 고유한 영성과 성성으로서 독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종래의 성인상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났다. 현대인은 찬란하고 위대한 성인보다는 예컨대 소화 데레사 같은 그늘에 가려졌던 사소하고 일상적인 생활에 충실했던 성인에게 일층 매력을 느낀다.「바티깐」공의회가 부부와 직장인과 평신도 같은 평범한 신분의 성성을 강조하게된 것도 아마도 이와 같은 소이에서였을 것이다.
전형적 성인상에 대한 심상치 않은 동요는 그간의 성인 공경의 자세와 시성 절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성인 공경이나 시성 절차 자체를 폐지시킬 수는 없었다.
예로부터『성인은 우러러 볼 것이지 모방할 것이 아니라』고 전해오는 말은 아마도 20세기 후반의 기술 문명 가운데 사는 현대인에게 가장 적합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인의 이와 같은 기대와는 달리 성인 공경이 폐지되지는 않았고 다만 지난 공의회는 성인 공경을「교회론」에 종속시킴으로써 그 공경의 자리를 개인의 구원에서 교회 공동체로 옮기고 지상에서 여행하는 교회란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다룬 데 불과하다.
종말론의 재발견은 분명히 현대 신학의 중심문제로서 하느님을 역사의 주인이며 지배자요 완성자란 관점에서 인간과 역사를 고찰하려 한다. 교회는 역사 안에서 출생하고 역사 안에서 자라고 완성을 향해 부단히 자신을 쇄신해 나가야 하는 전진의 교회인 반면에 성령의 활동으로 이미 자신 안에 어느 정도 완성의 요소와 멤버를 갖고 있는 상의 단체인 것이다.
한국 교회가 자신의 완성의 요소로서 갖고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의 순교 복자이다. 그들의 모범으로 인해 한국 교회도 완성의 희망을 갖고 그네들이 도달한 미래의 나라를 더욱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지상과 천상의 교회는 서로 통하고 있음을 우리는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바로 자기 자신의 성성인 순교 복자들의 성성을 고백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는 세계적이고 세계로 하여금 그들의 성성을 알아듣게 해야 한다. 익명으로나 포괄적으로 선포해서는 안 되며 구체적으로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밝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한국 교회의 고유하고도 미속적인 성성이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고백과 선포는 다름 아닌 한국 교회가 자신 안에서 성령의 발자취를 발견하는 자기의 교회사에 대한 고백이요 선포인 것이다. 성인 공경이 천주 공경의 하나의 방법일진대 한국 성인들의 성성의 고백을 동시에 한국 교회의 고유한 경신의 표현이 될 것은 물론이다.
시성의 역사는「미중의 소리」에서 발단하였다. 과연 민중의 소리는 하느님의 소리로 간주되어 순교자들이 성인으로 선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사용은 남용을 낳는다」는 속담과 같이 민중의 소리에 남용이 생기자 여기에 주교의 판단이 개입하였고 주교의 판단에 남용이 생기자 결국 교황이 개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미루어 오늘날 우리의 시성시복운동이 제 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그 출발점인 민중의 소리가 약한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교와의 무성의를 원망하기에 앞서서 민중의 소리에 끼어들지 못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반성해야 할 것이고 교황청의 무관심을 안타깝게 생각하기에 앞서서 우리 자신의 협조 부족을 원망스럽게 생각해야 할 줄로 생각한다.
끝으로 시복운동의 절차도 과거에 있어서는 먼저 순교자들의 묘소를 찾고 확인한 다음 순교자들의 후손을 찾아 순교자들에 관한 증언을 널리 청취하였다. 시복에 순교자의 유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더할 수 없는 도움이 됨은 물론이요 순교자들에 대한 신심을 앙양하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한두 권의 교회 역사책에서 과거 두 번의 시복식에서 누락된 순교자의 명단을 만들어 제출하는 것으로 시복운동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함은 큰 오산일 것이다.
한국 교회가 할 일은 무엇보다도 먼저 시성시복이 우리의 여망이라는 민중의 소리를 드높이는 데 있다. 거기에 우리의 땀과 돈이 뒤따라야 함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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