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와서 한국 교회 초창기의 천주가사(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천주가사를 연구해온 국문학자와 사학자들은 한결같이 천주가사의 문학적 질이 우수했다고 높이 평가한다. 동시에 이들은 천주가사의 문학적 생명이 쇠잔해버린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안타까와 한다. 문학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가사들은 정약종의「십계명가」이벽의「천주공경가」이가환의「경세가」최양업 신부의「사향가」「천당가」등이다. ▲이들 가사들은 일반 민중들이 천주교의 진리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고 있다. 그것은 딱딱한 교리 해설문이 아니고 노래였기에 부녀자들이 물레질을 하며 흥얼거릴 수 있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속성(?)인 신바람과 맞아떨어지게 될 때는 굉장하게 보급될 소지가 충분했다. 전교열이 대단했던 초창기의 신도 지도자들이 천주가사를 창작한 의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들 선구자들은 포교의 사명이 토착화에서 출발돼야 함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나「신나게」부를 수 있는 천주가사가 쇠잔해버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그리스도교 문화를 전적으로 무시한 전교 방침에서 비롯됐음이 틀림없다.「외형적인 일치」와「서구문화의 강요」가 빚은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성가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띤어 속에 폐쇄되고 말았고 천주가사는 하나의 문학적 유물로 쇠잔되고 말았다. 그만큼 토착화의 길은 멀어지게 된 것이다. ▲토착화는 대대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민중의 생활과 융합한다는 뜻이다. 밀중과 호흡을 같이 하고 민중의 생활 현실을 민중의 눈으로 보며、민중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천주교가「서양종교」로 남아 물 위의 기름처럼 된 것은 이 토착화를 거부한 데서 출발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백년이나 늦게 들어온 개신교보다 열세한 것도 민족운동인 3ㆍ1운동에 불참한 것도、모두 여기에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토착화를 거부하게 된 이유 중의 하나로 당시의 교회 지도자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는 사실을 들 수는 있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 사정을 보면 그런 이유라도 수긍할 수 없을 것 같다. 지도력의 상실이 너무나 현저하기 때문이다. 신도들은 마치 바다 가운데서 통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떠다니는 현상이 된 듯하다. 문득 故 김광섭씨의 시가 떠오른다.「하늘과 나라 사이가/이렇게 멀어져서/나라를 주신 분의 뜻이/흙에 서지 못하니/넘어질 때 붙잡을/머리카락 하나/하늘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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