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에 간호원으로 가 있는 유리안나씨가「루르드」성지순례를 갔다가 그곳의 성수를 떠서 소포로 부쳐왔다.
지난해 5월에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계속하고 있는 나의 일곱 살 난 아들 빈첸시오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보낸 것이다.
백혈병에 쓰이는 몇 가지 희귀한 약품과 같이 투명한 플라스틱 성모상 안에 맑은 물이 담겨 있다.
유리안나씨의 정성과 기구가 담겨 멀고 먼 길을 날아온「루르드」기적의 물. 한없는 감사의 눈물이 흐른다. 하느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불행을 당하면 끝없이 절망한다. 나도 처음엔 나의 어린 생명에 모질게도 달라붙는 병마를 끝없이 저주했고 하느님이 나를 버리신다 하여 방황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은 오로지 하느님께로부터 와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 갈갈이 찢기는 모성애를 아프게 기우며 이 세상에 이루어질 기적이 단 한 번이라면 그 단 한 번의 기적을 바라며 이 고통을 이기기로 했다. 지난 10여개월 동안 포기할 수 없는 어린 생명을 간호하며 수 없는 좌절을 당했고 그때마다 성모님은 당신이 당하신 십자가의 고통을 일깨우며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이제 빈첸시오는 별 어려움 없이 치료를 계속해 가고 쾌유의 희망이 기적처럼 살아났는데 오늘 받은 「루르드」의 성수로 하여 더욱 확실해지는 것 같다.
나는 아주 어린 소녀 시절부터 얼마나「루르드」에 가 보기를 열망했던가?
대구 효성학원에서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나는 남산동에 위치한 성모당을 잊을 수가 없다. 국민학교 4학년 때「루르드의 성모」를 환등기를 통해 보고 성녀 베르나뎃다와 같이 성모님을 뵙게 되기를 바라며 그곳을 본 떠 지워진 성모당에서 묵주알을 굴리며 얼마나 감질나 했는지 모른다. 철 따라 피는 그 동산의 갖가지 꽃과 풀잎을 성모님께 바치며 나를 기억해 주실 것을 졸랐고 혼자 계셔 외롭다며 친구들과 하학길에 소꿉장난을 즐겨 바쳤다.
꿈을 먹던 소녀는 나이를 먹고 성숙하기 위한 숱한 고민과 회의를 한마디 양해 구함도 없이 무더기로 안아다 드렸다. 여름날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퍼부어대는 질문에도 성모님은 항상「젤마나 대답은 벌써 네 안에 있지 않느냐?」하실 뿐이었다.
이제 내 나이 서른을 넷이나 넘겼고 성모당을 찾지 못한 지도 10년. 절박한 심정으로 이 물을 대하고 보니 옛 일이 그립다. 지금 이 순간에도「루르드」에는 병고에 시달리는 많은 환자들이 열심히 기도하며 성모님의 기적을 바라고 있을 게다. 나도 유리안나씨의 뜻대로 이곳이 비록「루르드」성지는 아닐지라도 열심히 성당에 나가고 열심히 기구하여 빈첸시오의 쾌유를 성모님께 빌며 자신을 봉헌해야겠다.
그리하여 빈첸시오가 태아였을 적부터 나의 소망이었던 사제가 되는 날. 그날 성모님의 기적을 말하리라.
루르드의 성모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실만 하면 이 성수로 빈첸시오를 쾌유케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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