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서엔 눈에 대한 이야기가 아흔아홉 번 나온다. 예수께서 맹인에게 손을 대어 눈을 뜨게 하신 기적도 그 한 가지이다. 성경만이 아니라 우리 옛 속담에도「몸 천냥에 눈이 구백냥」이란 말이 있듯이 눈이 우리 자신 가운데에서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지를 잘 표현한 옛말이다. 또 누구나 눈은「마음의 등불」이라고 하는 데에 고개를 끄덕인다. 가장 속 깊은 말 한마디, 가장 하기 어려운 말 한마디는 입이 아니라 눈이 하기 때문이다. 어느 명화에서도 인간관계의 절실한 한 장면은 주인공의 눈 표정으로 처리되는 게 다반사이다. 그만큼 눈은 솔직한 부분이어서 애정의 확인도 눈이요 입으로 저지른 배반도 눈으로써 속죄하게 마련이다.
이런 눈이 의학이라는 과학으로는 어떻게 설명되는가? 눈은 뇌의 한 부분이 밖으로 누출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몸 밖으로 나와 있는 뇌인 셈이다.
실제로 뇌의 중추신경 12개 가운데 시신경을 비롯해서 4개의 신경이 눈에 오고 있다. 그러니 3분의 1이 눈과 관계가 깊다. 그러면 시신경이란 무엇인가. 직경이 불과 1.5밖에 안 되지만 그 신경섬유의 수는 약 100만이라는 천문학적 숫자로 얽혀져 있는 것이 시신경이다. 우리는 흔히 맑은 밤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을 쳐다보고 헤이려다 말고 입을 벌이는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눈 속에 하늘의 별만큼이나 무수한 시세포가 들어 있다. 사람의 맑고 고운 눈 속을 들여다 보라. 그 아름다운 눈빛은 하늘의 별보다 더 찬란하고 신비로웁다.
나도 안과 의사로서 과학을 한다고 하지만 눈의 구조를 파고들수록 창조주의 그 섬세 오묘한 권능에 매혹될 뿐이다.
흔히 과학자들이 유물론적인 사고방식으로 현상을 추적하려 들기가 일쑤거나 무신앙적으로 현상을 규명하고자 하지만 눈 하나만 보더라도 하느님의 그 권능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느님이 아니면 해결 못하는 점을 마침내 인정하게 된다. 적어도 나의 경우엔 이런 신념으로 수술에 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각막이식의 수술을 예로 든다 해도 그 결과는 전연 하느님의 뜻이다.
잘 진행된 것으로 알았는데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도 없지 않으며 수술 결과가 절망적이었는데도 뜻 밖에 결과가 완벽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의사의 입장으로선 수술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기도를 수술로 한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나의 의무이다. 앞 못 보는 환자가 일어나 빛을 안고 걸어나갈 때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낀다. 그것은 나의 기쁨이라기보다도 하느님에게 돌려야 할 축복인 것이다.
하느님이 한 인간에게서 그 영혼을 불러들일 때 남은 피조물에게 한 부분을 옮겨다 다른 피조물을 보완시키는 일에 내가 쓰임은 나의 기쁨이 아니라 하느님에게 돌려져야 할 축복인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살리기 위해 승천하는 육체에서 각막을 떼어 이식하는 안과수술은 내가 바로 하느님의 한 도구로써 쓰임을 당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피조물이 하느님의 뜻에 반해서 그대로 썩게 만드는 것보다는 다른 피조물에 보완시키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현대는 성경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의 기적은 우리가 의술로써 할 수 있는 그것을 암시한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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