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루르드」성지를 순례하고 귀국길에 올랐을 때다. 그날따라「빠리」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비행기가 이륙이 3시간이나 지연됐다. 벨기「부룻셀」공항에 내려보니「방콕」행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세계 곳곳으로 떠날 여행자들이 비행기를 놓쳐 법석을 떨었다. 여행사 직원들은 콤퓨터에 붙어 서서 다음에 연결되는 비행기를 찾아주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별 수 없이 여행사 직원 얼굴만 쳐다보는 6시간의 기다림이 시작됐다. 강행군을 해온 우리 일행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3시간쯤 지났을까. 거대한 체구에 어깨가 좀 구부정한 신부님 한 분이 다가와 친절하게 말을 걸었다. 그는 얼핏 보기에 본격적인 수도자 같은 인상을 풍겨 주었다. 신부님은 우리를 공항 내 작은 성당으로 안내하여 성체를 나눠 주었다. 그런 시간도 없었으면 무엇으로 그 지루함을 달랬을까. 전혀 엉뚱한 곳에서 전혀 예기치 못했던 포근함을 느꼈다. ▲근년에 와서 이민붐이 계속 일고 있다. 이민 가족이 이국 땅에 내리면 생면부지의 목사님이 공항에 마중 나온다고 한다. 목사님의 따뜻한 안내와 이민생활에 대한 소개 말씀에 큰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 가족은 목사님이 관리하는 교회의 신도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교포교회는 비행장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생겼단다 ▲이 같은 극단적인 표현은 이민을 자기 교회로 유치하려는 목사들의 생업 경쟁이 그만큼 대단한 것을 의미한다. 교포교회의 봉사적 기능과 기업성을 설명해 주는 말이다. 교포교회가 번창하는 이유는 단순히 목사님들의 생업 경쟁 때문만도 아니란다. 교회는 소수 민족의「정신적 구심점」이고 쌓였던 긴장감과 좌절감을 풀어주는 곳이며 나아가 생활 방편과 편의까지 제공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상황에서 번창하지 않는 교회가 오히려 비정상일 것이다 ▲「부룻셀」공항의 신부님과 이민을 마중 나온 목사님은 다 같이 봉사하는 성직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목사님은 생업 경쟁 속에 살고 있다. 공항의 신부님에게선「봉사」외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조건 없는 봉사는 훨씬 더 값어치 있고 깊은 감명을 준다. 다른 모든 신부들도 이 같은 조건 없는 봉사를 위해 사목 일선에 나섰다. 그러나 인간적인 취약성 때문일까. 그 활동이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기는 커녕 현실 사회와 동떨어진 교회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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