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태여 성가를 꼭 부르며 미사를 지내야 할 필요가 있는가?』하고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만약 성가 없이 미사를 지내야한다면 반찬 없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맹숭맹숭할 것이다.
이처럼 성가는 전례를 효과적으로 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더욱 열렬히 그분을 찬양하기 위함이며 속죄하는 마음과 우리의 소원을 더욱 간절히 사뢰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성가는 기도의 한 방법이고 더욱 적극적인 기도의 표현인 것이다. 그렇다면 온갖 열성을 다하여 성가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그러한 마음으로 부르고 있는지 각자 한 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답답할 정도의 느린 박자와 힘 없는 소리로 성가를 부르며(부른다는 표현이 적합치 않지만) 미사를 드리는 것은 누가 봐도 하기 싫은 미사를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느님께 최고의 영광을 드리는 예절이 이와 같이 행해진다면 오히려 당신을 욕되게 하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거룩한 전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톨릭의 신앙 구조는 은총으로 충만돼 있으며 개신교의 그것에 비길 바 아님을 우리는 자부하고 있다. 일전에 개신교의 예배에 몇 번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이것을 절실히 느꼈고 가톨릭 신자가 된 행운(?)을 새삼 감사하였다.
그런데 개신교 예절에서 우리가 겸손되이 본받을 것이 두 가지 있었다. 헌금을 바치는 신심과 찬송가를 힘차게 부르는 열성이 그것이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에서부터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음으로 열심히 찬송가를 부르는데 마치 이 예배 시간만은 바깥 세상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나더라도 알 바가 아니라는 태도들이었다.
우리도 이같이 성가를 부르면 얼마나 훌륭한 미사가 될 것이며 또 하느님께서는 또 얼마나 흐뭇해 하실까 하는 생각을 하며 부러워 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도 이처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가를 부르면 자연 전체가 열성을 다해 부르게 될 것이다.『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 크게 할려니 어쩐지 쑥스러워서…』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성의를 보시지 노래 솜씨에 즐거워 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많은 뜻 있는 분들이 열심히 성가를 부르려고 애쓰시고 본당마다 이러한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신자 전체가 이에 적극 호응하여 공동체의 일치감이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하느님을 찬미하는 기쁨을 누리도록 하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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