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우리 순교 복자들의 시성운동을 결의한 바 있었고 또 1925년에 시복된 순교자 79위의 시복 50주년을 맞아 한국 주교단이 발표한 사목교서가 모든 신자들에게 순교 복자의 시성운동을 호소하였고 또한 올해에 창립 30주년을 맞은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순교 복자들에게 기적을 구하는 기도문을 만들어 전국에 널리 배부하는 등으로 한국 순교자 시성을 위한 범신자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본보에서도 이미 79위 시복 50주년 기념 특별기획으로서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최석우 신부 집필인「순교혈사」를 54회째 연재하고 있고, 지난해 10월 12일자 사설에서 순교 복자의 시성운동을 촉구하면서 교회가 정한 시성제도의 의의와 교회법상 시성에 필요한 요건과 방법을 제시함과 동시에 시성운동의 구체적 방법을 제언한 바 있으며 특히 순교복자시성운동을 위한 전담기구의 설치를 주장하였다.
시성운동의 첫 단계이며 가장 중요한 운동은 먼저 우리 신자들이 뜨거운 신심을 통하여 순교 복자를 공경하고 자기의 성화와 한국 교회의 발전과 한국 사회의 구원을 위해 그 도움을 믿고 바라는 신심에서 순교 복자들에게 우리 기도의 전달을 구하는 일이다. 적게는 그 순교 복자의 출신지 또는 순교지의 신자들이 제 고장의 순교 복자에 대한 특별한 공경과 소원과 의탁을 가져야 하고 그 기적을 믿음으로 구하여야 한다.
또 한국의 순교 복자의 시성을 위하여는 먼저 한국의 신자들이 그 순교 복자의 신앙생활과 덕을 따르고 그 도움을 통하여 자신과 그 사회를 복음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교회가 일찍부터 시성제도를 마련한 것은 성인이나 성녀로 시성된 자의 천상에서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천상에서 누리고 있는 그들의 영광을 지상의 교회가 모든 신자들에게 공식으로 선언함으로써 지상의 신자들이 그 도움을 구하고 신앙생활의 귀감으로 삼고 수호자로 삼게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완성하려는 데 그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시성을 위한 조사와 판정에 있어서 그 뜻을 따라 신중을기하고 있으며 특히 교회가 뜻하는 시성의 목적에 적합한 자인가를 먼저 그 후보자의 가까운 주변에서부터 조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제 고장 신자들이 그 순교 복자에 대한 공경과 신앙적 의탁을 등한히 한다면 교회가 바라는 시성의 뜻을 찾지 못하게 된다.
즉 교회가 시성을 하게 되는 것은 그 고장의 신자들이 그 복자를 귀감으로 삼아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실을 들어 세계에 널리 선포함으로써 세계의 모든 신자들이 또한 그 신앙생활을 본받게 하고 그 도움을 청하게 하자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그 순교 복자의 가장 가까운 고장에서부터 시성운동을 시작하여 확대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남긴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널리 찾아내어 높이 현양해야 한다. 그 순교 복자를 위한 특별한 기념행사와 사업이 계속 추진되어야 하고 신앙적 감명을 줄 수 있는 모든 사료가 발굴되어야 한다.
생명을 바쳐 그리스도를 따른 순교는 그리스도의 증거자로서의 가장 명확한 표정이다. 그러므로 4세기의 미라노 칙령까지는 오로지 순교자에 한하여 시성될 수 있었고 현재에 있어서도 순교는 시성 요건으로서 가장 중시되고 있다.
이미 복자위에 오른 분들은 교회에서 그 치명을 순교로 인정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시성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하여는 그 순교에 관한 사료를 더욱 많이 필요로 한다.
생전의 신앙생활뿐 아니라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에 관한 사료가 필요하고 특히 순교하게 된 제반 사정과 그 동기와 순교과정에 관한 사료를 밝혀야 한다. 이 일은 지금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전념하고 있는 줄 알고 있으나 모든 신자와 특히 그 부문의 전문가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여야 한다. 순교는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이므로 그 사실들을 통하여 그 부르심이 증명되고 또 그 부르심에 순종한 사실이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식으로 시복된 순교자가 시성되기 위하여는 두 번의 기적만 있으면 시성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저마다 특정한 순교 복자를 통한 기적을 구하여야 한다. 즉 막연히 모든 순교 복자를 공경하고 현양하는 것으로 족하지 아니하고 특정한 복자에게 의탁하는 신심을 가지고 그 기적을 간구하여야 하며 그 기적이 교회의 확인을 받아야 하므로 이에 관한 모든 것이 그 증거 자료로서 보관되어야 한다.
끝으로 우리가 촉구하는 시성운동은 이 땅에 순교의 피를 흘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고 오늘의 한국 교회가 되기까지 돌보아 기르신 자랑스런 우리 조상의 후손으로서의 신앙적인 고백이며 의무임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빠짐 없이 이 시성운동의 선봉이 되어야 하며 또 이 운동으로 우리 순교 복자를 통한 하느님의 많은 은총을 받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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