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지난 6월 25일 모든 신자 부부들에게 사목교서를 발표하여 부부생활과 가족계획에 대한 교회의 태도와 가르침을 재확인했다. 교회는 오늘의 세계적인 문제로 되어 있는 인구 폭발과 자원 고갈과 식량의 부족 및 환경 오염 등에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또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많은 자녀를 가진 부모들에게 깊은 동정을 보내면서 현대 사회를 죄악으로 몰고 있는 윤리·도덕에 어긋나는 피임ㆍ임신중절 내지 낙태의 허용 등을 내용으로 하는 모든 가족계획 방법을 단죄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가족계획 자체에 대하여는 반대하지 아니하며 자연법에 어긋나지 아니하는 방법으로써 주기법과 배란법(점액관찰법)에 의한 가족계획을 교시하고 이를 위한 부부간의 신앙적 협력과 특히「행복한 가정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또 교황청은 일찍부터 인류 공동체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이민(移民)의 개방과 저개발 국가에 대한 식량 자원 기술의 원조를 호소하여 왔다. 그러나 국가간의 충돌이 그칠 사이 없는 긴장 속에서 자기 나라의 이익만을 고집하고 많은 재원을 전쟁과 그 준비에 남용하면서도 국제 협력과 세계 평화를 위한 성의 있는 호응이 부족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곳곳에서 아사자가 나오고 인구 폭발의 비명을 지르게 되었고 그 해결책으로써 대두된 것이 곧 가족계획운동이었다. 이 운동이 세계적인 운동으로 파급된 것은 사실이나 모든 국가의 운동은 아니다. 인구가 부족한 나라에서는 아직도 산아 장려를 하고 있는가 하면 인구 과잉 국가에서는 낙태에 의한 인구 조절을 하고 있다.
인구 폭발에 대한 전망적 우려는 이미 말서스의 인구론(인구 원칙에 관한 시론)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시론은 그 전제조건(假說)이 그 후에 현실과 맞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적중되지는 아니하였다. 그런데 오늘의 인구 폭발문제는 미래적인 전망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식량과 자원의 부족, 환경오염으로 인한 질병 등을 일으키고 있으므로 그 해결이 다급하다는 데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 가장 직접적이고 원천적인 해결책으로서 소비 절약을 위한 인구 조절 즉 가족계획을 들고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재고되어야 하고 비판되어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첫째는 과연 오늘의 인구 폭발문제와 미래적 전망이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인가 하는 문제이다.
즉 이 지구상에 오늘의 40억 인구와 앞으로의 자연 증가 인구가 먹고 살 땅이 없는가. 더 개발할 자원과 기술이 없고 더 확장할 수 있는 인간 생활권이 없는가. 만약 자원과 기술의 개발이 오늘날 그 한계점에 도달했다면 가족계획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러나 만약 인구 분포의 편재와 국가간의 장벽 때문에 일어난 부분적인 현상이라면 가족계획에 앞서 인구 분포의 균형을 꾀하는 데 모든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사람 구경을 못하는 방대한 원시림이 있고, 이용할 기술이 모자라 버려둔 넓은 사막과 바다가 많고, 개발 기술이 모자라 잠재우고 있는 자원과 생산 기술이 수없이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모든 국가 지도자들은 오늘의 인구문제에 대한 공동 책임을 느끼고 인류 공동체 의식과 형제애로 그 구체적 해결책을 함께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는 새로운 자원 개발과 인간 생활권 확대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다. 모든 국가 지도자들은 국제 평화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전쟁과 전쟁 준비에 소비하고 있는 모든 자원을 이 연구에 돌려야 할 것이다. 제 자녀를 양육할 힘이 없는 부모가 제 유능(有能)을 자랑한다면 웃음꺼리밖에 안 된다. 그런데 현대인은 미래 세대를 낳아 양육할 힘이 없어 그 출생을 막고 있으면서도 현대 문화를 자랑하고 있지 않는가. 웃어줄 사람이 없어 웃음꺼리가 못될 뿐이다.
셋째는 그 마지막 방법으로서의 가족계획이다. 그러나 가족계획은 그 대상이 적어도 앞으로 태어날 생명들이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약물이나 기구 사용에 의한 피임이나 임신중절 내지 낙태는 사목교서가 지적한 대로 하느님이 세운 자연법을 어기고 살인하는 반윤리적인 행위일 뿐 아니라 그 합법화에 따르는 성생활의 윤리적 퇴폐와 모체의 건강 등, 그 부작용이 크게 우려된다.
우리의 조상들은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을 큰 수치로 생각하였고 아기를 낳은 부모는 그 기쁨과 더불어 갖은 사랑으로 그 아기를 길렀다. 그런데 현대인은 아기를 셋만 낳아도 수치나 실수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부모와 사회의 눈치 속에서 자란 아기의 장래를 생각하면 미래의 세대가 크게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현재 실시되고 있는 가족계획의 결과만을 보더라도 양육할 능력이 많은 인종이나 국가나 가정에는 아이가 거의 없고 이와 반대로 그렇지 못한 곳에 아이들이 범람하고 있다. 이 현상은 명백히 인간 사회의 퇴보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특히 가족계획운동이 낳은 성생활의 문란은 여러 가지 사회 범죄와 인간의 퇴화를 낳고 있다.
끝으로 특히 교회와 그 지도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교회가 가족계획운동을 감시하고 그 윤리적 잘못을 경고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모든 국가 지도자들에게 인류 공동체 의식을 고취시켜 이민 자원 개발 등을 통한 인구 분산과 생활 자원의 증대에 힘쓰도록 보다 적극적인 배려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기구를 통한 활동이 필요한 동시에 또한 각국 교회 지도자들은 관계 국가의 지도자들과 더불어 이민 자원 원조, 기술 원조 등으로 인구문제의 공동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법을 모색하는 데 더욱 힘 써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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