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 전국협의회에서는 지난해 9월에 가진 바 있는 제8차 총회에서 68년 이래 주창만 해오던 우리의 순교 선열들의 시성ㆍ시복을 위한 추진운동을 재확인하고 이를 금년도 평협사업의 근간으로 삼아 그 운동 전개를 결의한 바 있다.
이를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운동으로 전개키 위해 평협에서는 우선적으로 교회사학자 교회법학자 및 평신도 대표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설치,「시성ㆍ시복운동」의 방향을 설정하기에 이르렀으며 이어 전국 교구의 성직자 및 평신도를 대상으로「시성ㆍ시복추진위원회 발기인」을 선정 위임하여 오는 9월 16일에 그 발기인대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우리의 이와 같은 여망이 반영되어 1976년도 주교 회의 춘계 총회에서도 총회에 참석한 13명의 주교와 3명의 주교대리 연명으로 복자들의 시성 청원서를 교황청에 제출함과 동시에 시성 촉진 책임주교로 수원 교구장 김남수 주교를 선임한 바도 있다.
돌이켜볼 때 평신도들이 처음으로 도입, 그것을 전파한 바 있는「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한 교리도 뉴먼 추기경의 말을 인용해 볼 때,『교회가 이 교리를 믿게 된 것은 그것이 신앙교리로 정의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구구하게 우리 한국 천주교회사를 들추려는 의도는 없으나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 한국 천주교회사는 평신도의 순교의 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행적을 본받아 그많은 우리의 선열들은 기꺼이 영광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너무 안일무사한 사고방식으로 한 방울의 땀도 흘리지 않고 신앙생활을 영위해 왔다. 가시밭 황무지를 선열들의 피땀으로 개척한 그 터전 위에서 그저 공짜로 가져다준 하느님의 은총을 아무런 양치평양도 시험해 봄이 없이 향유해 왔던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결과란 오늘날의 우리 교회가 차반사로 저지르고 있는 주체성의 결핍과 빈곤 바로 그것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손에 들고 있는 보배를 보배로서 깨닫지 못하고 그저 막연하게 무언가를 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 왔음을 오늘이란 시점에서 솔직히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우리는 잠자는 신앙인, 늙고 폐쇄적인 교회라는 불명예스러운 지칭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앞길에는 호사다마란 말과 같이 많은 저해 요소가 가로놓여 있을 것이나 이제 우리는 선열들이 보여준 그 치솟는 불길과도 같은 적극성을 되찾아서 감연히 우리가 목적하는 바를 향해 매진, 이를 관철시켜야 할 숙명적인 과업을 수행해야 할 때가 왔음을 자각해야 하겠다.
우리가 희구하는 시성ㆍ시복추진운동의 방법으로서는 첫째로 백만 한국 가톨릭 신자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지존하시고 자애로우신 천주께 기도를 바쳐야 할 것으로 안다. 백만 신자가 한마음 한뜻으로 바치는 이 기도야말로 바로 오늘날의 기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선열들이 남긴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널리 찾아내어 높이 현양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런 신앙적인 감명이 우리로 하여금 천주 안에서 하나로 묶어주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며 목숨을 바쳐 그리스도를 따른 순교는 그리스도의 증거자로서의 가장 명확한 표징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우리가 전개하는 시성·시복운동의 기초 자료 조사에는 많은 자금이 소요될 것이다. 이 땅에 순교의 피를 흘려 그리스도의 복음을 심고 오늘의 한국 교회가 세워지기까지 돌보아 기르신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상의 후손으로서 마땅히 져야 할 의무라 생각된다.
마태오 25장 14∼30절의 탈렌트의 비유와 같이 결코 우리는 쓸모 없는 종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시성시복운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상에서 열거한 여러 방법을 부단히 실천해야 함은 물론, 지속적인 끈기로서 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범교회적인 참여가 긴요히 요구되고 있음을 재천명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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